[NBA] 역사적인 승부(Denver vs Utah), 위대한 승부사(Murray vs Mitchell)

덴버 너게츠(Denver Nuggets)가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로 향한다. 너게츠는 3일(한국시간)열린 유타 재즈(Utah Jazz)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최종전(7차전)에서 재즈를 80 대 78, 2점차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2라운드 행을 확정지었다. 재즈는 경기 한때 19점까지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으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마지막 승부처에서 니콜라 요키치(Nikola Jokic)를 제어하지 못하면서 패배했다. 마이크 콘리(Mike Conley Jr.)가 종료직전 던진 버저비터 3점슛이 림에 들어갔다 튀어나오고 나서야 승패가 결정될 정도로 마지막까지 승패를 알 수 없었던 명승부였다. 오늘 승리로 너게츠는 NBA역사상 플레이오프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극복하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12번째 팀이 됐다.
재즈와 너게츠는 치열한 7차전까지 이어진 시리즈 내내 긴장감 넘치는 경기들로 농구팬들에게 명품 승부를 선사했다. 이 시리즈의 백미는 재즈의 도노반 미첼(Donovan Mitchell)과 너게츠의 자말 머레이(Jamal Murray)가 보여준 득점 맞대결이었다. 두 팀이 보여준 3점슛 대결도 또한 볼만했다.
▣ 미첼 vs 머레이가 쓴 역사
각각 재즈와 너게츠를 대표하는 가드 미첼과 머레이는 시리즈 내내 역사적인 ‘쇼타임’을 보여줬다. 이 두 선수가 연출한 쇼는 2주 동안 펼쳐진 7번의 경기 내내 이어졌다. 시리즈의 승자는 너게츠지만 두 선수가 빚은 쇼타임의 승자는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 모두가 눈부신 활약으로 존경 받을 플레이를 보여줬다.
부상으로 인해 올랜도 버블에서 열린 경기에 뒤늦게 합류한 자말 머레이를 향한 기대는 애당초 크지 않았다. 정상 컨디션이 아닐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정상 컨디션이라고 하더라도 기복이 늘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미첼은 큰 경기, 클러치 타임에서 약하다는 평가와 징크스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이들은 주변의 평가와 예상을 뒤엎고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NBA의 미래를 책임질 가드로 올라섰다.
머레이는 시리즈를 구한 해결사가 됐다. 그는 너게츠가 1라운드 탈락에 몰린 채 펼쳐진 재즈와의 6차전 엘리미네이션 매치에서 50득점을 퍼부어 팀의 119 대 107 승리를 견인했다. 이 날 미첼도 44득점을 올렸지만 재즈의 2라운드 진출을 이끌 순 없었다. 6차전 머레이가 올린 50득점은 특히 의미가 깊다. 이날 경기로 인해 미첼과 머레이는 NBA역사상 최초로 ‘각기 다른 팀의 두 선수가 두번(multiple) 이상의 50득점 이상을 올린 시리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도노반 미첼 1차전 57득점, 4차전 51득점∙자말 머레이 4, 6차전 각 50득점). 머레이는 플레이오프 3연속 40득점 이상 기록한 세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앞선 두 명은 제리 웨스트, 마이클 조던이다. 미첼은 유타 구단 단일 플레이오프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재즈의 확실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두 선수가 이번 시리즈에서 합작한 475점은 역대 NBA 플레이오프 단일시리즈 최다기록이다.
▣ 2001년 ‘카터 vs 아이버슨의 대결’을 소환한 승부
농구팬들이라면 기억할만한 가드들의 스코어링 대결은 2001년에도 있었다. 동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토론토 랩터스 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76ers)의 시리즈였다. 유타∙덴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랩터스와 식서스의 시리즈도 7차전까지 접전을 펼쳤다. 각 팀의 에이스인 빈스 카터와 앨런 아이버슨은 각각 시리즈 평균 30.4득점과 33.7점 득점을 올렸고, 두 선수 모두 1번씩 5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아이버슨이 기록한 시리즈 3점슛 성공률은 43.2%였다. 위에 언급한 두 선수들의 득점력보다 낮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요즘처럼 승리팀이 120점 넘게 기록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7차전 내내 승리팀이 기록한 점수는 84~87점 사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두 선수가 기록한 득점 비율은 이번 시리즈 미첼과 머레이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는다. 미첼과 머레이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과거 명승부를 소환하며 2020년대 포문을 여는 시대의 승부를 보여줬다.
▣ ‘3점슛’ 대결의 진수를 보여준 시리즈
지난 월요일 열린 6차전에서 두 팀 합계 3점슛 성공률은 50%였다. 필드골 성공률이 아니라 3점슛 성공률이다. 너게츠는 1차전에서 41개를 던져 22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시리즈 내내 너게츠는 44.9%, 재즈는 44.3%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했다(플레이오프 진출 팀 전체 3점슛 평균 성공률은 37.5%). 수비가 허술했는지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았는지 알 수 없지만 놀라운 수치다. 재즈는 1차전 패배이후 극단적인 빠른 템포의 공격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슈팅 횟수로 해법을 들고 나왔다. 이 해법이 시리즈 중반 잘 먹혀들 수 있었던 배경엔 보는 바와 같이 높은 3점슛 성공률에 있었다.

▣ 너게츠가 택한 승리의 해법은 ‘수비’
1차전을 승리한 뒤 내리 3연패를 당하는 동안 너게츠가 택한 전술은 ‘맞불’이었다. 이 경기 구간 가장 많은 득점을 양산한 쿼터가 1쿼터였던 걸 감안하면 너게츠가 시작부터 재즈의 빠른 농구를 봉쇄하기 위한 작전이 ‘같이 달리는 농구’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7차전 역시 양 팀은 화력전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최종전에서 남긴 두 팀의 득점은 158점이었다. 두 팀이 6차전까지 기록한 득점은 평균 234.3점이었다. 양 팀 모두 7차전 승리의 열쇠로 ‘수비’를 선택했지만 재즈는 마지막 구간에서 요키치를 막지 못했다. 너게츠 수비 전술의 중심에는 6차전부터 부상에서 복귀한 게리 해리스가 있었다. 해리스는 미첼을 4쿼터에 2득점(FG 1/4), 2실책으로 틀어막았다. 특히 그는 경기 종료 17초를 남긴 상황에서 미첼을 상대로 ‘끝내기 스틸’을 하며 수비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 두 팀과 가드 에이스들이 보여준 시리즈는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명승부였다. 경기 직후 미첼과 머레이가 끌어안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버블의 ‘하이라이트 릴’로 남을 것이다.
배수의 진을 치고 승리한 너게츠의 2라운드 상대는 ‘우승 사냥꾼’ 카와이 레너드가 이끄는 LA클리퍼스다. 정규시즌 맞대결에서는 너게츠가 1승 2패로 열세였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살아난 너게츠의 기세가 클리퍼스도 집어삼킬지 모르는 일이다. 너게츠와 클리퍼스의 또 다른 명품 승부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