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뉴욕 양키스의 캡틴, 애런 저지(Aaron Judge)

애런 저지(Aaron Judg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데릭 지터 이후 모처럼 뉴욕 양키스가 내세운 캡틴(주장) 애런 저지는 양키스의 전설, 나아가 야구계에 레전드로 남을 수 있을까요.
저지는 어떤 선수, 어떤 사람일까요. 양키스타디움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를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애런 저지는 아이들에게 공을 던져주거나 사인을 해주는 횟수, 평범한 안내원과 야구장에서 일하는 전기 기사, 관리자들과 하이파이브, 주먹인사를 나누는 횟수에서 단연코 1등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지는 온화하지만 배려심이 깊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이 있는 선수라는 겁니다.
그는 특히 ‘무례함’을 혐오한다죠. 야구에 대한 태도 또한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저지는 야구장에 출근해 첫번째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말없이 게임을 준비하는데만 전념합니다.

이미 저지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고, 양키스를 빛낸 수많은 전설들과 비교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그를 두고 요기 베라, 알렉스 로드리게스, 조 디마지오 등을 양키스 역대 홈런 기록에서 제치게 될 거라고 말한 팬들에게 저지는 “그런 특별한 세 사람과 가까워지다니, 와. 놀랍네”라면서 쑥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세 명의 이름이 들어간 문장은 그게 어떤거든 참 특별하다”고도 했죠.
저지는 평소 양키스 주장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저는 양키스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이 조직에 속해 있는 만큼, 내가 어떤 바탕 위에 있는지 늘 주의 깊게 보고 느낀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는 위대한 과거를 자산으로 가지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주장으로 있으면서 그려갈 양키스의 미래 또한 매우 뜻깊게 여기고 있단거죠.

저지는 어쩌면 지금보다 은퇴한 뒤에 더 많이 회자될 선수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신체조건도 이야깃거리인데요. 201cm에 129kg의 거구인 그는 몸무게만 놓고 보면 NBA의 니콜라 요키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 큰 몸을 이끌고 야구장의 넓은 외야 한쪽을 책임지는 수비를 매일 밤 펼치죠. 담장 앞에서 점프를 뛰어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기도 하고 때론 빠르게 달려 다이빙 캐치도 성공시킵니다. 이 키와 이 몸무게로 쉽게 가능하단 말을 할 순 없죠. 이런 플레이들이 지금은 당연한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선수가 리그를 떠나면 그 때 ‘와, 진짜 놀라웠지’ 하게 될지도 모르다는겁니다.
이 선수가 앞으로 어떤 족적을 계속해서 남길지 평범한 저로선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함께 일해온 타격 코치 제임스 로슨은 “저지는 정상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저는 그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가 그 어떤 야구선수보다 더 많은 걸 해낼거라 믿는다”고 말한 걸 간접적으로 인정할 수 밖엔 없습니다.

저지는 데뷔 타석에 선 날로부터 가장 빨리 350홈런 고지에 오른 선수입니다. 앞으로도 큰 부상 없이 비교적 건강을 잘 유지한다면 저지라는 이름은 홈런메이커로서 양키스 역사에 선명하게 새겨질 게 틀림없습니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이조, 미키 맨틀 처럼요. 참고로 루 게릭은 통산 493홈런, 미키 맨틀은 536홈런을 쳤습니다. 물론 저지가 찬스 때 허무하게 물러나거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큰 거 한방을 쳐내지 못하는 타석이 많아질 땐 팬들의 아쉬움도 커지죠. 이건 그만큼 그를 향한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저지는 이미 지금까지 장타율과 OPS 통계수치에선 조 디마지오나 미키 맨틀을 앞선 상태입니다. 현대 야구 통계를 전문적으로 내는 팬그래프(FanGraphs)에 따르면 저지는 조정득점창출능력(wRC+)에서 루 게릭과 맨틀, 디마지오보다 높은 성적표를 썼고, 메이저리그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베이브 루스와 테드 윌리엄스 다음인 3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의 제이슨 스타크 전문기자는 “저지는 현대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타자일 수 있다”고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저지 라는 이름이 알려진지 비교적 오래되진 않았지만 의외로 그는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빅리그 데뷔가 조금 늦은 탓이죠. 그는 올해 33세 시즌을 보내는 중입니다. 저지는 평소 “난 40대까지 야구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고 말합니다. 지금 양키스와 맺은 계약은 그의 나이 39세까지 진행됩니다. 저지의 바람대로라면 이 계약이 끝난 뒤 저지는 한번 더 새 계약을 따내야겠죠.
저지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몇 시즌을 지금처럼 뛴다면 앞서 말한대로 미키 맨틀이나 루 게릭의 홈런 기록은 넘어설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659홈런)의 자리를 앞서긴 어려워보이죠. 이를 두고 저지는 “(베이브 루스 기록을)꿈꿀 수야 있다. 희망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목표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매일 그라운드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지가 루스의 기록에 도달하기 위해선 올해 55홈런(현재 35개)을 치고 앞으로 8시즌 동안 쉬지 않고 평균 36개의 홈런을 쳐내야 합니다. 그래도 저지는 루스와 비교해서 241경기나 덜 치르고 350개 홈런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실감하시죠.

저지는 정말로 양키스 레전드들과 비교가 가능한 그런 슈퍼스타인걸까요. 여러 양키스 선배들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먼저 로이 화이트의 평가입니다. 화이트는 맨틀과 함께 양키스에서 뛴 동료이자 저지의 대 선배입니다. 그는 “저지가 이뤄온 것을 보면 디마지오나 맨틀의 카테고리로 올라섰다고 확신한다. 난 디마지오의 플레이를 보면서 성장했고 맨틀과는 매일 같이 뛰었다. 맨틀은 스위치 타자로서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했었다. 저지는 이와 비교해 체격면에서도 압도적이고 외야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둘 중 한명만 선택하라 한다면 그냥 둘 다 고르는 게 맞겠다”고 했습니다. 맨틀과 비교해 부족할 게 없단 평가죠.

이번엔 맨틀의 동료이자 여러 시대 전설들을 마운드에서 마주한 투수 알 다우닝의 의견입니다(다우닝은 행크 애런에게 715번째 홈런 기록을 선사한 그 투수 입니다). “저지는 어느 세대에 갖다놔도 통할 재능 있는 선수다. 시대의 유행과 관계없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맨틀과의 비교 평가에선 냉정했습니다. 그는 “맨틀과 동급인지에 대해선 아무래도 맨틀 아닐까. 왜냐하면 맨틀은 양쪽 타석(좌, 우)에서 파워풀한 배팅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양키스가 승리하는 순간을 시그니처 멘션으로 만들어낸 존 스털링은 디마지오, 맨틀의 경기를 매일 밤 생중계한 레전드 앵커 입니다. 그는 “저지는 위대한 양키스의 전통에 속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저지는 야구 실력 뿐 아니라 인품 또한 남다르다”고도 했습니다.

정리해놓고 보니 저지에게 아쉬운 점은 그의 데뷔가 좀 많이 늦었단겁니다. 잭슨 츄리오나 잭슨 할러데이, 바비 위트 주니어처럼 데뷔가 더 빨랐다면 어땠을까하는거죠. 저지는 25세가 되어서야 빅리그 무대에 섰으니까요. 사실 저지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야구선수로서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습니다. 요즘 추세를 반영하면 저지는 대학에서도 비교적 오래 머물렀습니다. 프레스노 주립대(Fresno State)에서 3년을 보냈으니까요.
그의 배팅 퍼포먼스가 정점에 이를 때 코로나 팬데믹이 겹친 거도 아쉬웠죠. 또 그는 여전히 무관입니다. 지난 시즌, 오타니 쇼헤이가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걸 눈앞에서 봐야만 했죠.

저지가 위대한 유산을 품은 선배들처럼 기억되기 위해선 적어도 몇 개의 우승반지는 필요합니다. 그게 없이 양키스 캡틴으로 오래 추억되긴 힘들지도 모르죠. 그러기 위해선 본인 스스로가 포스트시즌에서 증명해내야 합니다. 우승팀의 캡틴으로서의 자격이요. 지금 그가 해야 할 일 또한 명확합니다. 일단 10월에 야구를 해야한다는 거죠.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디비전 1위 자리를 내준 지금, 저지는 누구보다 바빠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