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브라이스 하퍼(Bryce Harper), 화려한 스타에서 묵묵한 리더로

오늘은 브라이스 하퍼(Bryce Harper)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펄펄 날고 뛰는 슈퍼스타 ‘하퍼’를 집중조명하진 않습니다. 하퍼는 32세 시즌을 보냈습니다(그리고 얼마 전 33세가 됐습니다). 조금씩 커리어 황혼기를 향하고 있죠. 필리스 성적을 좌우하는 톱플레이어로서의 퍼포먼스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커룸에서의 존재감,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더십은 더 커졌죠. 이제는 조금 담담해진 그의 야구이야기입니다.
필리스는 시즌 내내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6월 이후 같은 지구 메츠의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필리스는 독주체제를 굳건히 다졌습니다. 팀 성적이 고공비행 할 수 있었던 배경에 몇 명의 스타 플레이어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카일 슈와버(kyle Schwarber)는 50홈런을 날리면서 센세이션 시즌을 보냈죠. 오타니가 없었다면 지금 당장 내셔널리그 MVP를 받아도 이견 없을 시간이었습니다. 작 휠러(Zack Wheeler)도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견고히 감당했습니다. 또 사이영 컨텐더로 성장한 크리스토퍼 산체스(Christopher Sanchez), 리그 타격왕에 오른 트레아 터너(Trea Turner)가 매일 밤 필리스 승리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섰습니다. 사실 그 자리 주인공은 오래도록 브라이스 하퍼였습니다.

하퍼는 필리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잖아요. 하퍼는 MVP만 2회 수상했고 올스타에 뽑히기도 수차례, 2022시즌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 역할이 변해갔습니다. 하퍼는 이번 시즌 주로 3번에 배치돼 타석에 섰습니다. 필리스는 하퍼가 중요할 때 ‘한방’을 터뜨려주는 그 모습에만 집중하길 바라진 않았습니다. 터너와 슈와버 뒤에 서며 이 둘이 더 좋은 공을 칠 수 있도록 투수의 집중력을 분배시킬 수 있는 역할을 원했습니다. 이번 시즌 하퍼의 OPS는 .852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지운다면 참 좋은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하퍼라는 이름을 달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그의 커리어 평균 OPS가 .906입니다. 하퍼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시즌을 보냈어요.
이를 두고 롭 톰슨(Rob Thomson)은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팬들이 하퍼에게 기대하는 수준보다 높지 않았죠. 저 조차도 하퍼의 성적이 높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퍼는 이번 시즌 안정적으로 매 경기 출전하진 못했습니다. 그는 오른쪽 손목에 염증 부상으로 인해 3주가 넘는 시간을 부상자 명단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보니 홈런도 슈와버의 절반 수준에 그쳤죠. 9월 한달 간은 타율 .216 OPS .716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팀이 성적을 내고 가을을 향한 최종점검이 필요한 때 그는 힘을 보태지 못했습니다.

“미스터 하퍼! 당신은 여전히 필리스의 주인공입니까?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까?” 시즌 중 한 기자가 하퍼에게 질문했습니다. 기자는 기대치에 이르지 못한 하퍼의 활약을 꼬집으려고 했죠. 하퍼는 “저는 클럽하우스에 있는 모든 이들이 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퍼는 이번 시즌 중반, 롭 만프레드(Rob Manfred) 커미셔너 면전에 육두문자를 시원하게 날려댈만큼 거침없는 언행을 보여줄만큼 성질만큼은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선 아주 점잖은 답변을 내놨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태도가 그랬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카일(슈와버)을 보세요. 믿기 어려울만큼 멋진 시즌을 보내고 있죠. 이번 해는 그의 계약 마지막 해 입니다. 모든 언론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게 당연해요. 팬들도 다른 구단도 그의 홈런 하나하나를 다 지켜보고 있잖아요. 선발과 불펜 마운드는 또 어떤가요.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맞춰 새 유니폼을 입은 듀란은 팀 승리를 따내는 순간 꼭 필요한 주연입니다. 그런게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또 리그에도 도움이 되는거고요.”

브라이스 하퍼는 가을야구를 앞두고 본인의 정규 시즌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저는 대체로 만족합니다. 물론 손목 부상으로 경기에 빠졌다가 복귀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전혀 몰랐습니다. 선수로 뛰면서 수도 없이 많은 부상을 당해봤고, 부상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조금씩 그 반응도 달라지는 거 같아요. 매년 이런 시즌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해요. 또 그럴 수 있습니다.”
한 때 리그에서 가장 스웨그 넘치는 플레이를 펼친 선수도 세월의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퍼의 이런 멘트와 마이크 웍은 동료들에게도 분명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료들이 하퍼를 팀의 ‘리더’이자 진정한 고참으로 인정하게 했죠. 실제로 슈퍼스타가 즐비한 뉴욕 메츠에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해준 선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팀과 팬들은 프란시스코 린도어(Francisco Lindor)가 해주길 바랐지만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타석마다 홈런을 뻥뻥치고 헬맷을 내던지며 베이스를 질주하는 하퍼의 모습은 조금 줄었지만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커져갔습니다. 필리스는 정규시즌 지구 1위를 빠르게 확정했고 가을야구를 준비하는 시간도 여유있게 확보했습니다. 하퍼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압니다. 제 개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필리스는 큰 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클럽하우스 모든 선수들과 함께 같은 밧줄을 힘차게 당기고 있어요. 지금까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정말 잘 해내야 할 시간은 결국 포스트시즌입니다.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수십대의 카메라가 야구장 곳곳에서 우리를 찍고, 수만명 관중이 환호성을 내지르죠. 전 세계 야구 팬들이 우리를 주목하는 그 때 기회를 꼭 잡아야해요.”
하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adelphia Phillies)의 가을야구는 짧게 끝났습니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직행했고, 홈 어드밴티지까지 안았지만 다저스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시리즈에 앞서 내놓은 전문가들 예측에선 필리스가 우세했지만 필리스는 다저스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하퍼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단 아쉬움이 컸습니다. 필리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꼽히는 하퍼는 디비전시리즈에서 15타석에 들어섰지만 2할에 그쳤습니다. 홈런도 타점도 기록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즌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하퍼도 필리스도 이 시즌의 끝을 두고 좌절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확신합니다. 그들에겐 더 큰 즐거움과 미래가 분명히 찾아오지 않을까요. 많은 것을 내려놓고 팀의 디딤돌이 되길 진심으로 원하는 ‘리더’가 있으니까요. 리그 30 팀 들 가운데 이런 확고한 리더를 데리고 있는 팀은 손에 꼽을만큼 적죠.
그의 화려했던 데뷔 시즌과 커리어 초반부 워싱턴 내셔널스(Washington Nationals)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만큼이나 선수생활 후반기도 참 인상적입니다. 이래저래 이야기거리가 넘치는 걸 보면 브라이스 하퍼는 진짜 스타가 맞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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