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곰돌이들의 반란(The uprising of young Grizzlies)

시즌이 열리기 전 주요 스포츠 매체들은 새 시즌을 예측하며 ‘파워랭킹’을 발표한다. 그 중 가장 저명한 매체 중 하나인 ESPN은 2019-2020시즌 파워랭킹을 발표하면서 올 시즌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 팀으로 멤피스 그리즐리스(Memphis Grizzlies)를 선정했다.
그리즐리스는 지난 시즌 중 팀의 간판 스타였던 센터 마크 가솔(Marc Gasol)을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시켰다. 그리고 오프시즌에는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마이크 콘리(Mike Conley Jr.)마저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시키며 리빌딩을 선언했다. 이렇게 모두의 예상대로 그리즐리스의 이번 시즌은 조용히 지나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즌 반환점을 지난 1월 29일(한국시간 기준, 이하 기준 동일) 현재, 그리즐리스는 23승 24패(승률 .489)를 기록하며 서부컨퍼런스 8위에 올라있다. 9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는 2.5게임차, 10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는 3게임차로 앞서 있다. 그리즐리스는 리빌딩이 아닌 플레이오프 대비를 해야 할 상황이다.
모두가 꼴찌를 예상했던 팀에 어떤 일이 벌어 진걸까. 그리즐리스가 이번 시즌 핫한 팀으로 떠오른 이유를 살펴보자.
루키 ‘자 모란트(Ja Morant)’가 불러온 에너지
“팀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을 때 선수들은 이기고 싶어합니다. 팀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팀 내 분위기도 가라앉고 자연스레 승리도 멀어집니다.”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San Diego Padres)에서 활약 중인 외야수 토미 팸(Thomas James Pham)이 작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앞서 디 애슬레틱을 통해 ‘비인기 구단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고충’을 토로하며 가진 인터뷰 중 일부다.
팀이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구단 내 신선한 에너지가 도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시즌 개막 전 그리즐리스가 주요 스포츠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작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그리즐리스에 입단한 가드 자 모란트(Ja Morant) 덕분에 그리즐리스는 스포츠 뉴스의 단골손님이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팀에도 승리를 향한 에너지가 생겼다.
모란트는 시즌 초반이었던 10월 28일 브루클린 네츠(Brooklyn Nets) 와의 경기에서 네츠의 스타 카이리 어빙(Kyrie Irving)과 4쿼터 마지막 2분간 득점 쇼다운을 펼치며 이 날 CNN 스포츠 뉴스의 프론트를 장식했다. 모란트는 40여초 남은 순간 카이리 어빙의 레이업 슛을 블로킹 하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10월 28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승) 134:133 브루클린 네츠
*자 모란트: 30득점, 4리바운드, 9어시스트, FG% 59.1%
*카이리 어빙: 37득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 FG% 40.7%
또 마이크 콘리의 멤피스 방문경기로 전국 중계로 편성된 11월 16일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는 과거 그리즐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콘리를 압도하며, 콘리와 홈팬들 앞에서 자신이 새로운 그리즐리스의 스타임을 보여줬다.
■ 11월 16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승) 107:106 유타재즈
*자 모란트 : 25득점, 4리바운드, 8어시스트, FG% 40.9%
*마이크 콘리 : 15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FG% 26.3%
자 모란트는 1월 29일 현재, 평균 17.5득점, 3.5리바운드, 7.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 장기 결장한 자이언 윌리엄슨(Zion Williamson)을 제치고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그는 리그 톱클래스 클러치 스타로 성장하고 있다. 4쿼터에만 평균 7.7득점을 올리며 이 부분 4위에 올라있다. 모란트는 그가 거두고 있는 성적과 더불어 신인의 저돌적인 패기를 보여주며 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테일러 젠킨스 감독의 공격 전술
서부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전성기를 누린 2010년대 중반 그리즐리스 농구의 상징은 ‘느린템포’에 기반 한 ‘온 포지션’ 플레이와 디펜시브 레이팅을 끌어올리는 수비농구에 있었다. 이 전술을 디자인한 데이비드 피즈데일 (David Fizdale) 감독은 마크 가솔, 마이크 콘리와 함께 그리즐리스의 일명 ‘늪 농구’ ‘허슬 농구’의 핵심이었다.
그리즐리스가 리빌딩 버튼을 누르며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피즈데일 감독과의 이별이었다. 그리고 지난 오프 시즌 1984년생의 젊은 감독 테일러 젠킨스(Taylor Jenkins)를 선임했다. 그는 마이크 부덴홀저(Mike Budenholzer) 감독이 이끄는 밀워키 벅스의 어시스턴트 코치 출신으로 팀 전술 방향이 부덴홀저 감독과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부덴홀저의 어시스턴트 코치 이전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밑에서 코치 생활을 경험했다).
“우리팀에는 자 모란트, 자렌 잭슨 주니어, 딜런 브룩스 등 젊은 선수들이 많다. 우린 빠른 공격을 설계해 나갈 것이다.” 젠킨스 감독이 취임 첫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공략대로 그리즐리스의 팀색깔은 변했다. 지난 시즌 경기템포 30위(리그 최하위)를 기록한 그리즐리스는 올 시즌 해당 부분 3위에 올라있다. 젠킨스 감독은 빠른 경기 템포에 기반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공격의 기본 전술로 삼고 있다. 그리즐리스는 속공 득점 리그 4위, 3점슛 성공률 리그 3위, 팀 어시스트 리그 1위, 그리고 경기당 패스 성공 회수는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원활한 패스 흐름과 공간 활용을 통한 외곽 오픈 찬스 창출은 그리즐리스의 공격력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승리를 향한 선수들의 강한 의지
지난 1월 21일 그리즐리스는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홈 경기에서 116 대 126으로 패하며 팀의 7연승이 마감됐다. 이 날 경기는 3쿼터에 이미 25점차로 뉴올리언스가 앞서나가며 승패가 일찌감치 갈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리즐리스는 4쿼터 1분 28초가 남은 순간 5점차까지 점수 차이를 줄이며 경기를 접전으로 끌고 갔다. 4쿼터에 악착같이 점수를 줄여 나가는 모습을 보며 멤피스의 홈 중계진은 “그들은 터프한 전사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 날 경기 직후 열린 인터뷰를 통해 딜런 브룩스(Dillon Brooks)는 “우리는 경기에서 졌지만 싸울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연승은 끝났지만 우리 팀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이며, 우린 여전히 더 잘 싸울 방법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그리즐리스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가진 팀이고 선수들 사이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 날이었다.
젊고 빠른 팀 그리즐리스에는 분명 한계도 존재한다. 몇 년간 팀 컬러의 핵심이었던 ‘수비’ 성적을 보완해야 한다. 디펜시브 레이팅 성적표는 리그 17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플레이오프 권에 있는 팀들과 비교하면 최하위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펠리컨스와의 경기에서 그리즐리스는 무려 21개의 3점슛을 허용하며 상대팀에게 프랜차이즈 기록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리즐리스는 팀이 상승세 가도를 달리는 동안 LA클리퍼스(1월 5일), 휴스턴 로케츠(1월 15일), 덴버 너게츠(1월 29일)등 서부컨퍼런스 우승후보들과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며 ‘수비’ 불안을 ‘공격’으로 풀어내는 해결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 시즌 가장 강력한 꼴찌후보로 선정된 그리즐리스는 예상을 뒤엎고 플레이오프를 바라보는 팀으로 성장했다. 이제 그들만의 특별한 힘을 바탕으로 강팀들도 대결을 꺼리는 다크호스가 됐다. 과연 이번 시즌 어린 곰돌이들의 반란은 어디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