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MLB

[MLB]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터프한 승부사, 뉴욕 양키스의 맥스 프리드(Max Fried)

contentory-1 2026. 3. 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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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프리드

“넌 너무 부드러운 남자야.”

이 말이 누군가에겐 장점일테지만 대상이 야구선수라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정신적으로 허약하다는 단점을 에둘러 쓴 말일지도 모르죠. 점점 더 가혹해지는 스포츠비즈니스의 영역에서 ‘부드럽다’는 캐릭터 묘사는 결코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맥스 프리드를 두고 때론 누군가가 ‘그는 참 부드러운 선수지’라고 평가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투구폼이 될 수도 있고, 마운드에서의 차분한 모습을 가리킨걸지도 모르겠지만 프리드 본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완강하게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32세 시즌을 맞이하는 프리드먼은 이미 세 차례에 올스타에 뽑혔고, 네 번이나 골든글러브를 받은 베테랑 승부사입니다. 2021년 월드시리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양키스는 그런 점을 높이 사면서 8년 2억1800만달러 짜리 계약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이제 양키스는 그에게 좀 더 ‘강인한’ 모습을 바라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프리드는 강한 남자라기 보다는 부드러운 신사에 가깝습니다. 그는 말수가 적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날씬합니다. 마치 어떤 소설에서 볼 법한 꼬장꼬장한 그런 남자 캐릭터에 가깝죠. 키는 193cm나 되지만 운동선수로선 다소 왜소해 보이는 86kg에 불과합니다. 또 외모도 백인에 준수해서 외향을 두고 봤을 땐 편견이 생길 법도 했습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된 프리드

지난 2012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LA 하버드-웨스트레이크 고등학교를 졸업한 프리드를 전체 7순위라는 아주 높은 순번에서 지명했습니다. 엘리트 루키로서 본인과 팀이 큰 기대를 걸던 중 프리드는 토미 존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파드리스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채 애틀랜트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 때 파드리스는 브레이브스의 스타 플레이어 저스틴 업튼을 데려오기 위해서 전도유망해 보였던 프리드를 매물로 내놔야만 했습니다. 재밌는건 프리드를 뽑았을 때 파드리스의 단장이었던 채드 맥도널드는 자리를 옮겨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프리드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완결시켰다는 겁니다.

맥도널드 단장은 현재 콜로라도 로키스의 인사 수석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프리드는 아주 투지 넘치는 야구선수입니다. 오히려 그를 두고 부드럽다는 평가를 내리는 시각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는 “프리드는 절대로 소프트한 선수가 아닙니다. 그는 성장과 발전에 무엇보다 헌신하는 타입이고, 좋은 공을 던지지 못했을 때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기질도 있습니다”라면서 프리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된 프리드

프리드의 메이저리그 인생 여정도 결코 부드럽거나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토미 존 수술과 회복을 거쳐 2016년 첫 시즌을 맞이한 마이너리그에선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이듬해 무너졌습니다. 더블A클래스 미시시피에서 2승 11패, 방어율 5.92를 기록했습니다. 이 당시를 두고 프리드는 “내 야구 인생 최악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시점은 변곡점이 됐습니다. 커리어의 전환기를 맞이한겁니다. 고작 22세에 ‘이 길(야구선수)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2017년 8월 프리드는 빅리그 콜업을 받았습니다. 더블A에서 곧바로 메이저리거가 될 만한 성적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 때 브레이브스의 단장이었던 존 코폴렐라는 프리드를 2018 시즌 선발 로테이션 자원으로 보고 경험을 쌓게 하려고 승격시켰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브레이브스가 리빌딩을 통한 팀 재건의 시기였기에 이런 행운이 찾아왔을겁니다. 그 해 브레이브스는 72승을 거두는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후 6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프리드의 빅리그 데뷔무대는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에서였습니다. 필리스를 상대로 한 2이닝 무실점 구원 등판이 시작이었습니다. 2017시즌 막판 9경기 중 4경기에서 선발 등판하면서 서서히 보직을 변경했고 그 경기들에서 방어율 3.44로 나름대로 큰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프리드는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의 다음단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의 가능성도 그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018시즌 프리드는 브레이브스 선발 로테이션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트리플A와 빅리그를 오르내리다 부상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잠시 주춤했지만 2019시즌 프리드는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로 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30경기 등판, 165이닝을 넘게 던졌고 리그 선발투수들보다 평균 방어율이 14% 이상 더 효율적인 선발투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는 매일, 매달, 매 시즌마다 ‘또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지금 놓고 보면 이런 불확실성이 오히려 그를 자극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불안감이 그를 단련시켰고,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고, 이젠 양키스의 제2선발투수가 됐습니다.

좌완 선발투수로서의 성장과 성공, 장기 계약. 모든 것이 쉽고 평탄하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복되는 부상과, 고질적인 햄스트링을 극복해내야했고, 심리적인 불안감도 떨쳐내야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 초반부에 인생의 행로를 야구선수에서 대학생으로 바꿔볼까에 대한 고민을 했던 선수가 리그 최정상급 선발투수로 우뚝 서기까지의 시간을 소프트하다고 묘사할 순 없을겁니다.

 

양키스의 투수 코치 맷 블레이크는 프리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대화할 때는 신사적이에요.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하지만 우리 로스터 누구 못지 않게 경쟁심이 두터워요. 공을 던질 땐 사냥꾼이 됩니다. 날카로운 커터를 손에 쥐고 정면으로 덤벼들잖아요.”

게릿 콜이 비운 양키스의 마운드를 지킨 프리드

다른 팀에서 올스타에 뽑혔다고 해도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그 성적을 유지한 선수는 적습니다. 가장 최근엔 소니 그레이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게릿 콜이 시즌 아웃된 작년 프리드는 개인 커리어 최다 195이닝을 넘게 던지고 평균 자책점은 2.86에 불과했습니다(리그 전체 8위). 단단한 내면의 심지가 굳게 서지 않고서야 이런 성적은 불가능에 가까울겁니다. 양키스 선수로서 견뎌내야 할 건 야구실력 말고도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밀어붙이고 성장시킵니다.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겠습니다. 매일, 매년 최선을 다해 제가, 우리팀이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결코 부드럽지 않은 야구 여정을 걸어온 강인한 승부사 맥스 프리드가 시즌을 앞두고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귀한 지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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