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MLB

‘빠던’, 메이저리그에서도 가능할까

더콘텐토리 2020. 6.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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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바티스타

 

세레모니에도 시그니처가 있다.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가드 데이미언 릴라드는 클러치(승부처)순간 슛을 성공시키면 어김없이 팔목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세레모니를 선보인다. 일명 ‘릴라드 타임’이다.
세리에A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는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골을 넣고 사이드로 달려가 빙글 돌 듯 점프하며 자축한다. 두 선수 외에도 독특한 세레모니로 유명세를 탄 스타 플레이어들은 많다.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은 자체 플랫폼 중계 방송 광고 시간에 ‘Celly Time(골 세레모니 모음)’을 편성해 선수들의 다양한 세레모니를 팬들에게 보여준다.
스포츠에서 스코어가 나는 순간 선수들의 독특한 세레모니는 새로운 스타를 만들고 또 스타들의 시그니처 무브먼트가 된다.

팬과 선수들에게 유쾌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코어 세레모니’가 야구에선 인색하다. 이런 현상은 메이저리그에서 유독 심하다.
야구판에서 가장 시원한 득점장면은 뭐니뭐니 해도 홈런. 홈런을 친 타자는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베이스를 돈다. 이 순간의 주인공이다. 다만 암묵적인 제한 조건이 있다. 얌전하게 돌아야 한다. 때린 타구가 홈런임을 직감한 순간 얌전함은 더 요구된다.

2015년 포스트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 대 텍사스 레인저스의 경기가 열린 로저스 센터에서 호세 바티스타는 극적인 역전 홈런을 쳤다. 홈런을 친 순간 한 차례 기합을 넣은 바티스타는 배트를 과감하게 집어 던졌다. 메이저리그가 금기시하는 행동이지만 이 모습을 본 관중들의 함성소리는 돔 구장의 특성에 더해 야구장을 떠나가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TOP1으로 꼽히는 ‘빠던’이 됐다. 바티스타는 다음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루그네드 오도어와 2루에서 시비가 붙었다. 오도어는 바티스타의 얼굴에 강 펀치를 날렸다. 이 장면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TOP1 으로 꼽히는 야구장 싸움이 됐다. 배트 플립에 대한 기억과 맞물려 언론과 선수들 사이에서 바티스타를 동정하는 여론은 거의 없었다(팬들은 아니었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는 데뷔 시즌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과감하게 배트를 집어 던졌다. 다음날 경기에서 아쿠냐 주니어를 향해 강력한 보복구가 날아들었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재목으로 성장한 아쿠냐 주니어는 그 날 이후 ‘배트 플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팬들은 다르다. 팬들은 야구판의 ‘락앤롤’을 원한다. 팬들은 배트 플립으로 인한 보복구와 보복성 행동에 짙은 야유를 보냈다. 말린스의 홈구장이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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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코로나 확진자가 한 자릿수로 줄어든 대한민국에서 프로야구가 시작했다. 무관중이었지만 전 세계 야구계의 눈은 한국프로야구에 쏠렸다. ESPN은 KBO 144경기를 매일 하루에 한 경기씩 미국 전역에 생중계 하기로 했다. 미국에 중계된 개막전에서 NC다이노스의 모창민이 홈런을 친 뒤 본능적으로 ‘빠던’을 시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ESPN 대화창은 “‘한국식 배트플립’이 시작됐다”며 온통 빠던 이야기로 도배됐다. 월드스타(?)전준우도 갑자기 소환됐다(전준우는 과거 ‘넋 나간 빠던’으로 ESPN의 하이라이트 릴에 등장한 적이 있다).

미국 야구팬들은 이토록 ‘빠던’, 배트 플립을 원하고 있다. 늙고 오래된 스포츠라 비판받는 메이저리그에 ‘배트 플립’은 분명 신선한 활력을 줄 수 있다. 과연 메이저리그에도 한국식 배트 플립 ‘빠던’이 가능할까.

오래도록 메이저리그를 보아온 우리는 아쉽게도 ‘메이저리그에서 지금 당장 빠던을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불문율’. 홈런을 치고 배트를 던지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배트를 던진 타자에게 던지는 ‘보복구’ 불문율이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보복구 불문율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미국 현지에선 ‘몇 회에 허들 감독의 지시를 받은 보복구가 날아들것인가’라는 내기까지 하겠나. 보복구는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 어떤 타자도 보복구를 맞고 싶어하질 않는다. 홈런을 치고 배트를 던진 다음 날 보복구가 날아들 걸 알고도 배트를 과감하게 던질 타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메이저리그 판을 주름잡는 층이 백인이란 점도 이유다. 메이저리그의 팬과 주인공 격 선수들은 오랫동안 백인이었다. 압도적인 성적이 뒷받침 되지 않고는 백인 외 인종이 리그의 주요 타이틀을 거머쥐는데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작년 제이콥 디그롬의 2년 연속 사이영상에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전반적인 성적지표는 류현진이 모두 앞섰지만 트로피는 디그롬이 들어올렸다.


연장선에서 백인 투수가 던진 공에 중남미 선수가 배트를 던지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지금은 NPB로 리그를 옮긴 애덤 존스는 “리그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팬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이 판의 주인공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긴적이 있다. 메이저리그 주류에서 낙인 찍히면 불이익이 있을까. 당연하다. 각종 트레이드와 연봉산정, 올스타 선정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들은 유명하다.
그렇다면 중남미 투수가 던진 공에 백인 타자는 배트를 쉽게 던질 수 있을까. 그 또한 쉽지 않다. 인종차별이란 딱지를 붙일 가능성이 있다. 배트 플립은 오래도록 조롱의 이미지로 비쳐졌다. 리그 백인스타의 상징인 마이크 트라웃이 중남미 선수의 공을 받아치고 배트 플립을 하게 되면 각종 언론은 유색인종을 조롱한 트라웃이라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빠던은 시작돼야 한다. 스타들의 과감한 행동은 팬들의 ‘흥’을 복돋는다. 야구장에서의 이런 ‘흥’이 리그의 새로운 흥행코드가 될 것이다. 스포츠도 디지털화 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팬 층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응축된 편집 화면에 열광한다. 그 중심을 채울 수 있는 홈런이 얌전해서야 되겠는가. 과감하게 배트를 집어 던지는 시그니처 세레모니를 연출하고 베이스를 도는 타자들은 분명 열광의 코드가 된다.

과연 될까. 사무국이 대놓고 조장하면 된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NHL의 ‘Celly Time’ 사례처럼 광고 타임 때 메이저리그식 빠던을 편집해 내보내 볼 것을 권한다. 보복구에 대한 강력한 징계도 방법이다. 알다시피 메이저리그에서 보복구에 대한 징계는 관대하다. 이런 점을 살짝만 비틀면 된다. 선수들 스스로의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당당하게 배트를 내 던지고 순간의 주인공이 되어보길 바란다. 작년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벌어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다저스 경기에서 다저스의 맥스 먼시가 자이언츠의 매디슨 범가너의 공을 받아쳐 장외 홈런을 만들었다. 경기장을 넘어간 공은 바다(맥코비 만)에 빠졌다. 소심한 빠던 이후에 타구를 감상한 먼시를 향해 범가너가 소리쳤다. ‘어서 베이스나 돌아라’. 이에 대한 먼시의 대답이 우리가 원하는 선수들의 태도다. ‘억울하면 맥코비 만에서 네가 던진 공을 건져와라’.

어쨌든 ‘빠던’은 팬들이 원하는 대세임을 확인했다. 축소된 2020시즌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는 많은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 중에 하나로 한국식 ‘빠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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