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NBA

탱킹(Tanking)은 패배자의 자세다!(feat. THE LAST DANCE)

더콘텐토리 2020. 6. 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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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승 무패를 기록해도 다음시즌 당신과 재계약 하지 않겠다”

NBA는 시즌 82경기를 치른다. 즉, 시즌 내내 모든 경기를 이겨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어처구니없는 이 말을 내뱉은 당사자는 제리 크라우스(Jerry Krause) 전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단장이다.

1997년 시카고 불스는 전 세계 스포츠의 구단의 아이콘이었다.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이끈 시카고 불스는 NBA역사를 쓰는 중이었지만 구단 경영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팀이 노쇠화하고 있다는 판단과 함께 ‘리빌딩(Rebuilding)’ 계획을 세웠다. 불과 며칠 전 파이널 우승 2연패를 차지한 팀이 노쇠화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다.

리빌딩의 설계자는 크라우스 단장이다. 그는 새 감독을 앉히는 구상부터 했다. 하지만 필 잭슨(Phil Jackson) 감독 교체에 대한 거센 반대여론에 제리 라인스도프(Jerry Michael Reinsdorf) 구단주도 어쩔 수 없었다. 구단주의 의지로 97-98시즌 단년 계약을 체결한 잭슨 감독을 향해 크라우스 단장은 시즌 결과에 관계없이 재계약은 없다는 일방통보를 한 것이다.

잭슨 감독은 불스와의 마지막 시즌을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라고 표현했다(이 말을 제목으로 쓴 스포츠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5월 11일 국내 넷플릭스에도 업로드 되기 시작했다).

조던은 “잭슨 없는 팀에선 뛰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해 단장의 계획에 선을 그었다.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은 98년 1월 구단에 자신을 다른 팀에 보내 달라 요청했다. 잭슨 감독이 칭한 ‘마지막’이란 키워드 아래서도 불스는 3시즌 연속 60승 고지를 넘었고, 2번째 파이널 우승 3연패를 달성했다. 그 이후 불스 왕조 체제는 해체했다.

제리 크라우스. 그는 NBA 역사상 최초의 비 농구인 단장이다. 주로 야구판에서 굴렀다(불스 단장이 되기 직전 MLB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카우터였다). 그는 구단을 조립하고 완성하는 모든 과정의 중심에 서길 바란 야심가다. 불스 영광의 중심에 고스란히 자신이 있길 바랐다.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선수 보는 눈 하나는 틀림없다’는 소신으로 1985년 크라우스를 단장에 앉혔다. 구단주의 베팅은 적중했다.

크라우스는 89-90 시즌 시작 전, 어시스턴트 코치 필 잭슨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85년 헐값에 가드 존 팩슨을 데려왔고(찰스 오클리 트레이드로 묻어온 격), 87년에는 스카티 피펜과 ‘고글맨’ 호레이스 그랜트를 염가 계약으로 입단시켰다. 88년 빌 카트라이트, 89년 BJ암스트롱과 93년 토니 쿠코치에 이어 95년 데니스 로드맨까지. 크라우스의 설계대로 만들어진 불스는 ‘왕조’를 구축했다. 10년간 ‘올해의 단장상’을 2회나 받으며 불스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누렸다. 재밌는 사실 하나, 불스 왕조의 중심에 선 마이클 조던은 유일하게 크라우스가 발탁한 선수가 아니다. 조던은 크라우스 체제 직전인 1984년 입단했다.

NBA에서는 전 시즌 정규리그 하위권 팀에게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준다. 성적이 안 좋은 구단에 우수한 신인을 통해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취지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하위권 순위를 기록해 다음 시즌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탱킹(Tanking)’이라 한다. 1997년 크라우스 단장이 구상한 리빌딩의 핵심이 ‘탱킹’이다. 감독과 머리가 클대로 큰 주요선수들을 다 내보내고 유망주들로 다시 왕조를 구축하는 ‘탱킹의 꿈’을 꿨다.

‘탱킹’은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끝없는 논쟁거리다. 매일 같이 기록지에 ‘패배’로 도배하는 날이 반복된다. 승리를 향한 집념을 내려놓은 경기를 보고 팬들은 지쳐가고 리빌딩의 끝을 기다리는 스타플레이어는 좌절하게 된다. 프로 스포츠는 결국 비즈니스란 걸 인정한다. 각 구단은 ‘탱킹’에 전략이란 말을 붙여 포장하고 상당기간 팀을 재건한다. 그 끝에 ‘우승’이란 두 글자를 채우면 다 잊혀지고 ‘탱킹’은 성과로 기억된다.

2017년 MLB우승을 차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ros)가 대표적이다. 2010년 이후 매 시즌 꾸준히 꼴찌를 차지한 덕(?)에 애스트로스는 호세 알투베, 조지 스프링어, 알렉스 브레그먼 등 슈퍼스타가 된 유망주들을 드래프트로 뽑았다(심지어 2013년에는 51승 111패를 기록했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Philadelphia 76ers)가 대놓고 애스트로스를 벤치마킹했다. ‘The Process’란 이름을 붙인 식서스 리빌딩의 주제가 ‘탱킹’을 통한 유망주 픽이었다. 2013-14시즌부터 시작한 탱킹으로 식서스는 4시즌간 75승 253패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었다. 험난한 패배의 시간들은 1라운드 픽을 많이도 가져다 줬다. 자릴 오카포∙조엘 엠비드(각 1라운드 3순위), 벤 시몬스∙마켈 펄츠(각 1라운드 1순위)까지 쓸어 담았다.

식서스는 애스트로스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탱킹은 실패했다. 매일 밤 지는 통에 팬들도 등을 돌렸다. 2015년 11월 식서스의 유망주 자릴 오카포(Jahlil Okafor)는 탱킹을 조롱한 농구팬과 주먹다짐을 했다. “너희는 형편없다. 식서스는 패배자고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일갈한 팬의 비난에 오카포는 참지 않았다. 그는 “긴 패배의 시간으로 심신이 많이 지쳤다”고 말했다.
긴 ‘탱킹’이 젊은 유망주의 승리 의욕마저 꺾어버린 것이다. 식서스는 이제 탱킹보다 지갑을 열어 트레이드로 스타를 모은다. 유망주로 빛을 보지 못한 펄츠와 오카포는 방출되다시피 팀을 떠났다.

행운의 ‘탱킹’으로 새 시대를 연 팀도 있긴 하다. ‘운칠기삼’이란 말이 딱 떨어지는 1997년 샌 안토니오 스퍼스(San Antonio Spurs)다. 96-97 시즌 스퍼스는 약체가 아니었다. 해군제독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과 올스타 포워드 션 엘리엇(Sean Elliott)을 기반으로 준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데 시즌 개막 6경기 만에 변수가 생겼다. 로빈슨이 무릎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것이다. 센터 농구가 대세였던 당시 로빈슨의 부상 이탈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당시 단장이었던 그렉 포포비치(Gregg Charles Popovich)는 반강제로 탱킹 노선을 택했다. 그 결과 20승 62패를 기록한 스퍼스는 199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픽을 잡는 행운을 가져간다.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출신의 팀 던컨(Tim Duncan)이 드래프트 시장에 나올게 확실시 된 당시 스퍼스의 선택에 여지는 없었다. 이 때 리빌딩에 가장 간절한 팀은 보스턴 셀틱스였다. 의도적인 ‘탱킹’으로 동부컨퍼런스 최하위를 차지(?)했지만 로빈슨이 빠진 스퍼스를 당해낼 순 없었다. 이처럼 탱킹에는 운도 필요하다. 던컨이란 복권을 품은 스퍼스는 2000년대 최고의 강팀이 됐다. 던컨과 함께한 스퍼스는 22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파이널 우승 5회, 준우승 1회라는 성과를 거뒀다.


‘탱킹’을 온몸으로 거부한 사내도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1985-86 시즌 시카고 불스는 앞서 말한 스퍼스와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에이스 마이클 조던이 시즌 개막 3번째 경기인 골드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왼쪽 다리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남은 시즌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크라우스 단장은 조던 없는 시즌을 ‘탱킹’으로 보내고 싶었다. 우수한 신인을 드래프트하겠단 청사진도 그렸다.

예상보다 빠른 회복으로 복귀한 조던은 크라우스 그림의 오점(?)이 될까, 크라우스 단장은 조던의 출전시간을 경기당 14분으로 제한한 족쇄를 채웠다. 시합에 나서고도 지는 날이 많아지자 조던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다. 크라우스 단장과 조던의 갈등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게 이 때부터다.

86년 4월 3일 플레이오프 진출이 걸린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단판 승부 종료 31초전 스탠 앨벡 감독은 출전시간 제한을 근거삼아 조던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1점차로 뒤진 초접전 상황이라 조던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다행히(?) 존 팩슨이 경기 종료 직전 역전 슛을 성공시켜 불스는 플레이오프에 나갔고 크라우스 단장의 탱킹은 실패했다.

이 사건 이후 조던은 경영진을 불신하게 되고 크라우스 단장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했다. 둘의 관계는 불스 왕조가 끝난 1998년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MBA(경영대학원)에서 ‘스포츠 비즈니스’를 주제로 강의를 개설하면 ‘탱킹’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챕터다. 성공하면 우승이란 열매로 돌아오지만 과정은 쓴 구단 경영 전략이다. 스포츠 정신을 망각했다는 오명, 팬들의 외면, 젊은 선수들의 좌절. 치러야할 기회비용은 크다. 결실에 대한 보장도 없다. 그래도 수 많은 구단이 이번시즌에도 ‘탱킹’을 고려한다.

NBC방송국의 스포츠 리포터 아마드 라샤드(Ahmad Rashād)는 “마이클 조던은 그가 뛰는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고 최선을 다했다”고 조던을 회상했다. 팀은 우승으로 기억될지 몰라도 라샤드의 말대로 선수는 플레이로 기억된다. 스포츠 다큐멘터리 드라마 ‘더 라스트 댄스’에서 마이클 조던은 “경기의 본질은 승리다. 스포츠의 위대한 원칙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뛰는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지금껏 팬들이 구단에 “우승 해 달라”며 “탱킹하라” 원한 적이 있었나. 팬들은 조던이 말한 승리를 향한 집념(스피릿)이 그라운드, 코트와 필드에서 매일 밤 펼쳐지길 바란다.

끝으로 영화 ‘머니 볼’에서 빌리 빈 단장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가 읊조린 한 마디 대사를 오마쥬한 표현을 쓰고 싶다. 팬들은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최선을 다한 진짜 스포츠를 보고 이 한마디를 남기지 않을까.

‘어떻게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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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tentory 2025. 5. 23. 13:54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1994-1995 NBA 플레이오프 동부컨퍼런스 준결승전은 뉴욕 닉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대결로 치러졌습니다. 닉스의 홈코트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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