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NBA

불스의 헤요카(Heyoka),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_feat. THE LAST DANCE

더콘텐토리 2020. 6. 27. 06:42
728x90

데니스 로드맨 그림

 

‘자기 목을 베는 그림을 그린 화가’

‘악마적 천재’라 불린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살인까지 저지른 광기 어린 인물이었지만, 그가 남긴 작품에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천재적 재능보다 숱한 기행으로 팬들의 입에 오른 NBA스타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 희대의 반항아 카라바조를 바로크 전기의 거장으로 기억하듯, 농구팬들은 로드맨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억한다.

그를 존중하고 코트에 세워준 감독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스토리다. 척 데일리(Chuck Daly), 필 잭슨(Phil Jackson) 감독을 만나 90년대를 장식한 리바운드왕 데니스 로드맨의 이야기다.

외로운 아이

어둡고 암울한 유년기를 보낸 NBA스타. 진부한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로드맨의 유년기 스토리에는 ‘놀라움’이 많아 살짝 귀가 쫑긋해질지도 모른다.

그에겐 무려 46명의 형제가 있었다. 배다른 형제들이란 설명을 굳이 붙일 필요도 없는 숫자다. 로드맨은 참된 부정과 반듯한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생활비를 못 벌어오니 꼴도 보기 싫다. 집을 나가라” 18살 로드맨에게 어머니가 한 말이다. 어머니의 진심(?)에 노숙 생활이 이어졌다. 그는 부정(父精)은 커녕 모정(母情)도 모른 채 외로운 사내로 성장했다.

다행히 그에겐 뛰어난 운동 신경이 있었고, 농구는 그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남자어른’으로부터 받은 ‘첫 사랑’

로드맨은 1986년 NBA드래프트에 참가해 2라운드 전체 27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Detroit Pistons)에 입단했다.

‘빅 맨’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신장, 정확한 미들슛이 없는 포워드.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찾은 영역은 ‘수비’와 ‘리바운드’였다. 이 때 세운 로드맨의 목표가 ‘한 경기 50리바운드’였다고 한다. 현실성 없는 목표지만 ‘무엇을 위해 코트에 설 것인가’에 대한 선수로서의 정체성은 뚜렷했다.

거친 몸싸움과 트래쉬 토킹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행동까지. 이 시절 피스톤스를 상징하는 ‘배드 보이스(Bad Boys)’라는 악명 높은 애칭에 로드맨의 이미지는 딱 맞아 떨어졌다.

로드맨의 기질을 이해하고 플레이 스타일을 존중한 척 데일리 감독은 그에게 정확한 임무를 부여하고 동기를 부여했다. 데일리 감독은 매일 밤 로드맨을 격려하고 그가 보여준 플레이에 감사함을 표했다. 로드맨도 공식 석상에서 데일리 감독을 가리켜 ‘The God’이라며 존중했다.

데일리 감독은 “농구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코트 밖에서는 뭘 해도 상관없지만 곧 너의 시대가 열릴 테니 조금만 참고 견뎌야 한다”며 아들을 대하듯 다독여줬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지해준 ‘남자어른’으로부터 받은 ‘첫 사랑’이 로드맨이라는 스타를 코트에 세운 힘이었다.

훗날 디트로이트의 지역 언론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Detroit Free Press)’는 “로드맨은 데일리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바쳤다”고 표현했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도 “어린 시절 아버지라는 큰 울타리 없이 힘들게 자란 로드맨에게 데일리는 가족 이상이었다”고 보도했다.

데일리와 로드맨은 1988-89시즌, 90-91시즌에 2년 연속 NBA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로드맨은 1990년과 91년 연이어 ‘올해의 수비상’을 받았다. 둘은 피스톤스의 황금기를 함께 만들었다.

잃어버린 열정

1991-92시즌을 끝으로 척 데일리 감독은 피스톤스를 떠났다. 로드맨은 “구단이 그를 배신했다”며 분노했다. 사적으로는 이혼까지 맞물리며 점점 평정심도 잃어갔다.

후임 감독 론 로드스테인은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 로드맨은 피스톤스 트레이닝 캠프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급기야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해달라고 요청했다.

로드맨은 뉴저지 네츠의 감독으로 선임된 척 데일리를 찾아갔다. 데일리가 해줄 수 있는건 그를 다독이는 일뿐이었다. 데일리 감독은 “피스톤스는 로드맨의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결국 로드맨은 1993년 샌 안토니오 스퍼스(San Antonio Spurs)로 트레이드 됐다. 스퍼스에서도 리바운더와 수비수로서의 역량은 잘 발휘했지만 팀에 녹아들지는 못했다.

경기보단 기행으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날이 많아졌다. 구단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로드맨은 점점 농구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다.

새로운 멘토와 팀

1995년 9월, 연봉 문제로 시즌을 보이콧한 로드맨은 결국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로 트레이드됐다. 기상천외한 ‘기행’으로 농구판을 떠들썩하게 만든 로드맨의 영입에 대해 미디어에서는 부정적인 뉴스를 내보냈다.

하지만 필 잭슨 감독과 주요선수들은 오히려 그의 영입을 반겼다. 팀의 주축이었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은 “그는 우리를 이기게 해줄 것이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우리는 안다”며 로드맨을 존중해줬다.

잭슨 감독과 피펜은 로드맨의 불스행이 확정된 뒤 척 데일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로드맨에 대한 조언도 구했다.

마음 둘 데 없던 로드맨의 방황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불스는 로드맨과 만난 후 진정한 왕조 체제를 구축했고 두 번째 쓰리핏을 달성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로빈슨은 로드맨이 스퍼스에서 활동할 때 사사건건 사생활을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좋은 말도 반복되면 잔소리’라고 자유를 갈망하는 로드맨 귀에서 피가 났을 것이다.

반면 불스의 동료들은 사생활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았고, 팀으로선 진심을 담아 애정의 손짓을 했다. 97-98시즌 들어 세 차례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로드맨이 심적으로 위축 됐을 때, 팀 동료 스티브 커(Steve Kerr)와 주드 부쉴러(Jud Buechler)는 필 잭슨 감독에게 “(로드맨과의)여행을 허락해 달라”했다. 잭슨 감독은 ‘팀의 융화’를 위해 이 여행을 흔쾌히 허락했다.

악동이미지로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동료가 심적으로 쳐져있을 때 내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한 동료들과 그 제안을 허락한 감독.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만 봐도 로드맨이 불스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잭슨 감독은 “그는 자유를 꿈꾸면서도 팀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불스에는 그의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감독과 팀원들이 있었다.

노스다코타 주립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필 잭슨 감독이 로드맨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택한 심리전술은 ‘존중’이다. 잭슨 감독은 코트 밖에서의 기행을 문제 삼지 않고, 데일리 감독처럼 코트 안에서의 성과를 인정했다.

전공과목 외에 ‘아메리칸 원주민 철학’도 깊이 있게 탐구한 잭슨의 학문기호도 한몫했다.

로드맨이 잭슨 감독과의 면담 중에 사무실에 놓여있는 인디언 소장품에 관심을 보이자 잭슨은 “너는 우리 부족의 헤요카(heyoka: 미국 인디언 신화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구별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평범하지 않는 네가 우리에겐 꼭 필요하단 이 말 한마디가 로드맨이 데뷔 초 세운 ‘한 경기 50리바운드’라는 초심을 다시 끄집어내게 했다.

2011년 데니스 로드맨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명예로운 자리에 본인을 소개할 인물로 로드맨은 필 잭슨 전 시카고 불스 감독을 선택했다(척 데일리 전 감독은 2009년 작고). 레전드로 코트에 서기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사로 내세우는 자리에 로드맨은 잭슨을 꼽은 것이다.

새로운 ‘낭만’을 기대하며

천재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그를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감독이야기. 게다가 좋은 결과까지 이어지니 ‘낭만’ 가득한 스포츠물 소재다.

하지만 요즘 농구판에 이런 이야기는 추억일 뿐이다. 이제 더 이상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감독은 없다. 내 재능을 알아주길 바라며 떼쓰는 젊은 신예 역시 보기 힘들다. 데이터로 무장한 코치진과 에이전트들의 연봉협상에 따라 움직이는 젊은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뉴욕 닉스 새 감독설이 나도는 탐 티보듀(Tom Thibodeau) 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감독과 이 팀의 어린 선수들의 갈등은 유명하다. 한 경기를 이기기 위해 경기시간 48분 내내 칼 앤서니 타운스, 앤드류 위긴스 등 주요 선수를 코트에 내세운 감독은 비난의 중심에 섰다.

숨은 재능을 발굴하지 않고 있는 재능만을 소비하려는 감독과 의욕 없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데니스 로드맨이 남긴 건 뛰어난 수비실력, 리바운드 숫자만이 아니다. 그와 감독들이 만든 열정과 감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의 업적과 더불어 그 시절 ‘낭만’을 느낀다.(경악할 기행들은...) 7월 31일 재개할 NBA시즌, 우리는 새로운 ‘낭만’을 기대한다.

 

 

[NBA] 되살아 난 뉴욕의 악몽 (by 할리버튼)

by contentory 2025. 5. 23. 13:54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1994-1995 NBA 플레이오프 동부컨퍼런스 준결승전은 뉴욕 닉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대결로 치러졌습니다. 닉스의 홈코트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1차

contentory.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