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이제 그를 놓아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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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이제 그를 놓아줄 시간

by 더콘텐토리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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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주목하게 된 건 그가 아직 18살이던 2010년 8월, 그 해(09/10)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첼시와 손흥민의 소속팀 함부르크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였습니다. 후반 교체로 나와 종료 3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넣은 손흥민은 놀라울 만큼 빠르고 영리했으며, 전혀 위축되지 않는 10대였습니다. 드록바, 에시엔, 램파드가 뛰는 첼시를 상대로도 자신의 플레이를 거침없이 펼쳐 보이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네요.

손흥민이 첼시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종료 3분을 남기고 2-1 역전골 득점에 성공한 모습
첼시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2-1 역전골에 성공한 손흥민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화면 너머에서, 낯설지만 반짝이는 그 이름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 것이.

 

이후 함부르크에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던 무렵인 2011년 겨울, 헤르타 베를린 원정을 떠난 그의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기 위해 추위를 뚫고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직접 찾았습니다. 그 경기에서 손흥민은 후반 추가 시간에서야 교체로 나와 겨우 2분여만을 뛰었습니다. 허무했지만, 오히려 더 애틋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함부르크 감독을 향해 투덜거리며 아쉬움을 쏟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된 사진을 뒤적이다 보니, 그날의 경기장 풍경도 함께 남아 있더군요.

 

손흥민은 단지 잘하는 선수가 아닌, ‘응원하고 싶은 선수’였습니다. 공 하나에 온 힘을 다하는 그의 헌신과 성실함은 팬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토트넘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손흥민은 축구를 좋아하는 저에게 기쁨이자 소중한 존재 중 하나였습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응원’을 넘어 ‘애정’으로 번진 건, 그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서부터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었을 때부터, 2018년 첼시전에서 조르지뉴와 다비드 루이스를 제치고 원더골을 넣었을 때, 그리고 2019년 번리전에서 수비진을 모두 제치고 골망을 흔들 때까지. 그 모든 순간을 새벽잠 설쳐가며 지켜보았습니다. 손흥민이 뛰는 모습을 보며, 기쁨도 아쉬움도 함께 느끼던 순간입니다.

특히 맨체스터 시티와의 2018/19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 골을 터뜨렸을 때의 전율은, 지금도 선명히 살아 있습니다.

손흥민이 맨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번째 골을 터뜨리고 세리머니하고 있다.
맨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번째 골을 터뜨린 손흥민

그의 커리어 정점은 아마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2021/22 시즌일 겁니다.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마지막 한 골을 추가하며 공동 득점왕에 오른 순간, 온 나라가 들썩였죠.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대한 감정이 ‘애정’에서 ‘원망’으로 서서히 바뀐 것도 바로 그가 득점왕을 차지하던 시즌부터입니다. 손흥민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커졌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시즌 손흥민은 대단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 배경을 냉정히 되짚어 보면, 실력뿐 아니라 여러 외적 변수들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시즌 초반만 해도 모하메드 살라의 득점왕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살라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에서 마네의 세네갈에 패한 이후 이유를 알 수 없는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게 됩니다. 영원한 득점왕 후보 해리 케인 역시 그 시즌엔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였죠.

 

해리 케인의 득점왕 페이스가 꺾이자 토트넘의 전술도 손흥민 쪽으로 쏠리게 됐습니다.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손흥민은 자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득점왕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뤄냅니다. 조금은 운이 따른 결과였지만 국내 팬들에게 손흥민은 이후 당연히 ‘득점왕이 되어야만 하는 선수’가 돼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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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노리치 시티와의 2021/22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하고 포효하는 모습.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손흥민

손흥민이 신격화된 것은 그 때부터입니다. 언론과 팬들의 기대치는 '득점왕'이 기본이 됩니다. 손흥민이 한두 경기 부진하면 감독을 원망했고, 손흥민에게 패스를 하지 않은 동료 선수들은 이기적이라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수비 가담이 많아지면 “왜 손흥민에게 수비를 시키느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흥민만을 위한 축구를 요구하는 팬덤이 형성되었고, 국내 유튜버들은 그러한 팬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죠.

 

“손흥민이 밥 먹여주냐, 고기도 멱여준다”는 어느 유튜버의 우스갯소리는 어느새 한국 축구 팬덤의 맹목성과 편향성을 대변하는 문장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애정은 맹목으로 흐르고, 맹목은 결국 지독한 피로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손흥민에게도, 한국 축구 전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도 한 몫 했습니다. 손흥민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언론들이 인터넷을 뒤덮었습니다. 최근 3개월 내에 쓰여진 기사 일부를 보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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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둘러싼 축구계의 모든 상황에 지치게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때는 '이제는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잘못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너무 과했기에 손흥민이라는 이름조차 피로하게 느껴지더군요.

 

블로그를 시작한 시기도 바로 그 때입니다. 팬덤이 아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할 순 없는지에 대한 고민, 일명 '국뽕' 없는 기사를 위한 외침이 이 일의 시작이었던 거죠.

 

그런데 오늘,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나기로 했다는 기자회견을 보며 제 감정은 또 한 번 요동쳤습니다. 이번엔 ‘연민’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 표정, 말끝에서 그가 지고 있었던 무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토트넘을 떠날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그는 “두 달 전부터”라고 답합니다. 한국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여름을 버텨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손흥민이 뉴캐슬과의 친선전을 앞두고 자신의 거취에 대해 기자회견 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설명하는 손흥민

여러 외신들에 따르면 토트넘은 아시안 투어 흥행과 스폰서 계약을 위해 손흥민의 출전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그는 또다시 팀과 함께 고국 땅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축구 선수’가 아니라, ‘상품’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손흥민의 진심어린 기자회견에 대한 축구팬들의 댓글에도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토트넘 떠나더라도 다른 프리미어리그팀으로 이적하면 안되나'" "오늘부터 토트넘 응원할 일 없음"

 

그들은 정말 손흥민을 좋아했던 걸까요. 아니면, '프리미어리거' 손흥민에 열광했던 걸까요.

그가 런던을 떠난 이후에도, 팬들은 여전히 그를 응원하게 될까요.

 

이제 저는 연민이 아닌, '애정'으로 다시 그를 바라보려 합니다.

10대 시절처럼, 공 하나에만 집중하고 경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손흥민에게 다시 주어지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짓눌려 뛰기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을 위한 축구를 할 수 있기를 또한 기대합니다.

손흥민이 UEFA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들고 인사하는 손흥민

손흥민.

이제는, 정말로 그를 놓아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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