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크리비(Elliot Cribby)라고 하는 투수코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아는 야구팬은 아마 거의 없을겁니다. 그는 워싱턴주에서도 비교적 작은 대학으로 꼽히는 시애틀 대학교의 투수코치였습니다. 코치직에 몸담은 첫 해, 의욕이 가득한 크리비는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을 어떻게든 나아지게 하고 싶어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은 선수들이 이미 주요 대학에 뽑혀갔을 테니 그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잠재력이 가득한 선수를 찾아내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리는 장소를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애리조나 주 피오리아에서도 고등학교 야구대회가 열렸는데 어느 때처럼 야구장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여러 선수들을 눈에 담고 있었죠. 바로 이 날, 운명의 톱니바퀴가 철컥 하고 맞아떨어집니다. 필드 먼 곳에서 크리비 코치의 눈에 든 아주 키가 크고 체격이 듬직한 왼손투수 한명이 서 있었습니다. 현대야구에서 보기 드문 높은 레그 킥을 사용하는 그 고등학생이 던진 직구 구속은 80마일을 상회했습니다. 평범했죠. 체형도 통통했고요. 이름도 묘했습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라스트네임이었습니다. 그 고등학생의 이름은 타릭 스쿠발(Tarik Skubal)이었습니다.

스쿠발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애리조나주 킹맨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인구가 3만명도 채 되지 않는 곳이죠. 부모님은 아들만 다섯을 낳았는데 스쿠발은 넷째였습니다. 커 가면서 옷입고, 먹고, 학교다니는 그 모든 과정이 형제끼리의 경쟁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법 괜찮은 운동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운동 코치들 눈에 든 모양입니다. 빌 맥코드 야구코치가 스쿠발을 선점했고, 학교를 대표하는 투수로 커갔습니다. 지역 대회 플레이오프에서 14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던 날, 동네의 화제거리는 온통 스쿠발이었지만 킹맨을 벗어난 지역에선 여전히 그의 이름을 들어본 야구 관계자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고3이 될 때까지 스쿠발에게 장학금을 보장하면서 입학을 제안한 학교는 없었고, 크리비 코치가 대신해서 제안한 시애틀 대학교는 스쿠발의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 입학을 결정하고 나서 방문한 시애틀은 스쿠발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렇게 큰 도시를 실제로 경험한 게 처음이었다고 하니까요. 2015년 시애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 대학에는 자체 구장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장비도 부족했고, 예산도 모자랐기에 야구공 하나를 쓰는 것도 귀하게 다뤄야만 했습니다.
스쿠발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이가 17세였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도니 해럴(Dony Harrel)은 “그는 마치 25세처럼 성숙했다”고 했습니다. 환경만큼이나 선수 구성에도 애를 먹은 시애틀 대학에서 스쿠발은 많은 등판 기회를 보장 받았습니다. 대학 첫 시즌 7승 4패 방어율 3.24로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 해 말에는 신입생 올어메리칸에 선정됐습니다.
2학년이 됐을 때 그의 구속이 급속도로 늘었습니다. 크리비 코치가 처음 스쿠발을 봤을 때 80마일에 불과했던 구속은 93마일까지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야구를 서서히 지배해 갔습니다. 세인트 메리스(Saint Mary’s)와의 경기에선 삼진 13개에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이 시합에서 스쿠발은 드디어 직구 구속 95마일 벽을 넘어섰습니다. 소년이 청년으로, 잠재력만 무성했던 유망주가 조금씩 완성형 대학야구선수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 경기 무리한 탓이었는지 팔꿈치 통증이 시작됐고 결국 팔꿈치 인대 파열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야만 했죠. 그의 커리어 첫 큰 수술이었습니다. 스쿠발은 2학년 시즌의 절반을 그리고 3학년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 때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게 빅리그에서 그가 더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는 바탕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영세한 대학교 소속이라고 해도 훌륭한 신체조건과 95마일의 직구를 던질 수 있는 왼손 투수를 빅리그에서 몰라볼 리 없었습니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29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했습니다. 하지만 스쿠발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 스쿠발은 “저는 드래프트 가치를 더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고, 저를 발견 해 준 학교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2018 시즌 다시 대학리그에 복귀해 95마일을 훌쩍 넘어서는 직구에 완성도 높은 커브볼까지 장착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려갔습니다. 빅리그 여러 팀이 스쿠발의 집에 전화를 걸어왔고, 주변에선 1라운드 지명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도 중순 이후 스쿠발은 빅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탐낼 만한 재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학창시절에 이미 한차례 토미존 수술을 받은 게 큰 걱정거리로 작용했죠. 스카우트들은 스쿠발의 구위에 놀랐지만 수술 이력을 이유로 들면서 매우 조심스러워했습니다. 또 4학년이 되면서 이유 모를 볼넷 비율이 높아진 탓도 그의 잠재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때 스쿠발은 스캇 보라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고객이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보라스는 아무나 대리하지 않죠. 보라스코퍼레이션의 귀한 몸이 된 스쿠발은 4학년이 되어서야 MLB 드래프트 시장에 다시 나섰습니다.

큰 수술과 높은 볼넷 비율은 예상 외로 구단들에게 큰 부담이 됐나 봅니다. 드래프트 8라운드가 진행될 때까지 이렇다할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9라운드 지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전화가 울렸고 에이전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너를 지명 할것이라고 연락이 왔어.” 참고로, 이 때 타이거즈가 1라운드에서 뽑은 선수가 케이시 마이즈(Casey Mize)였습니다. 타이거즈가 2010년대 중반 어두운 암흑기를 지나오면서 재건과정에 들어섰을 때 스쿠발은 그야말로 와일드카드 같은 존재였습니다.
‘긁어 볼 만한 복권’이었던 스쿠발은 지금 타이거즈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여러분 모두 잘 아시죠. 2024, 2025 두 시즌 연속으로 아메리칸 사이영상을 받은 이 시대 최고의 좌완투수가 됐습니다. 킹맨 시골 촌뜨기에서 야구장 하나 없는 시애틀 대학의 에이스로 키가 크고 95~98마일을 던질 수 있는 좌완투수지만 이미 토미존을 받았고 볼넷이 많아 걱정거리가 뚜렷했던 미완의 대기가 천장을 뚫고 미시건의 히어로가 되었죠.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건 1999년과 2000년에 이 상을 받았던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후 처음입니다.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이 기록에 올라선건 196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죠(데니 매클래인(Denny McLain)이 68, 69년 수상).
2024 시즌에는 만장일치로 상을 받았고, 이번에도 30표 가운데 26표나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였습니다. 볼넷 비율은 이제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고, 패스트볼 구속은 데뷔 후 최고로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체인지업이 그의 시그니처 구종이 되면서 헛스윙 비율도 리그 최상급이 되었죠. 아메리칸리그 투수 모두 가운데 승리기여도(6.5)와 방어율(2.21)이 1위였습니다. 그의 공헌에 힘입어 타이거즈는 작년에 이어 올해 가을도 야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시즌 문을 닫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됐을 때도 스쿠발은 기자들 질문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2026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갖추기 때문이죠. 온갖 트레이드 루머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새 시즌에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뛸 수도 있지만 시즌 중에 옷을 갈아입을지도 모릅니다. 그를 가이드하는 에이전시 대표는 여전히 스캇 보라스기 때문에 어쩌면 요시노부 야마모토가 세운 3억2500만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투수 계약 기록도 넘어설지 모릅니다.
디트로이트 팬들은 스쿠발이 영원히 타이거즈 유니폼만 입고 뛰길 바랍니다. 스쿠발이란 야수를 디트로이트 우리에 가둬놓고 싶겠죠. 하지만 야구의 비즈니스적인 부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런 부분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죠. 타이거즈 구단 측은 스쿠발의 미래에 대해 가능한한 공개적인 언급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팀도 스쿠발을 끝까지 붙잡길 바라겠지만 재정 상황이 아주 여유있는 축에 속하진 않기 때문에 연장 계약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할수 없습니다.

이제 스쿠발이 바라보는 건 월드시리즈 진출과 우승입니다. 과연 디트로이트에서 이 위대한 과업을 끝마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로스터로 다저스처럼 괴물 같은 팀을 토너먼트에서 이겨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투수로서 안을 수 있는 영광을 모두 품었기에 월드시리즈는 선수 시절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하면서도 유일한 소망일 겁니다. 스쿠발은 연장계약과 FA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여러 루머들을 듣고 보고 있습니다. 그게 제 일상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제가 디트로이트를 사랑하는 사실을 바꿔놓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기회를 받았고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습니다. 바라건대, 저는 여기에 남고 싶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스쿠발이 써온 성장 스토리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끝맺음을 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영웅적인 새 페이지를 채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스쿠발이 이제 곧 시작하는 WBC에서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기 때문이죠. 킹맨 시골의 영웅에서 아메리칸 히어로가 되기까지. 새 시즌에도 건강하게 마운드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