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 1대 0으로 제압 - '아놀드 더비'에서 모든 것을 얻다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1대 0으로 승리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코너 브래들리가 대활약하며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가 이적하며 생긴 공백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경기 전 아놀드의 벽화를 훼손했던 콥들의 배신감은 어느정도 진정이 됐을까요.
오늘은 오랜만에 챔피언스리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밤 새 빅 게임들이 많이 열렸죠. 많은 한국 팬들은 이강인의 PSG와 김민재의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를 빅 게임으로 보시겠지만, 그래도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가장 주목 받은 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X(구 트위터)에서 리버풀 팬들의 동향을 주시했는데요. 분위기는 살벌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두 장의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위 사진은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와 알론소 감독 등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이 안필드에 마련된 디오구 조타의 추모공간을 방문하는 사진인데요. 아놀드가 플레이스테이션 콘트롤러를 조타에게 전달하는 감동적인 사진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 달리 다수의 현지 리버풀 팬들은 댓글에 “저자식 눈물로 쇼한다”, “쥐새끼같은 놈”이라는 표현을 쓰며 노골적인 반감을 표했습니다.
또 다른 사진을 볼까요.

이 사진은 안 필드 인근 시빌 로드(Sybil Road)에 있는 아놀드의 벽화 모습입니다. 선수에게 벽화가 있다는 건 그가 그 도시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가늠케 해주는 일종의 증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경기 몇 시간 전, 이 벽화는 흰색 페인트로 뒤덮였습니다.
‘나는 단지 리버풀에서 태어나 꿈을 이룬 평범한 소년일 뿐’이라는 문장 아래에는 누군가가 “RAT(쥐 새끼)”라고 적었고, 그 아래엔 스페인어로 “adios el rata(잘 가라, 쥐 새끼야)”라는 낙서가 남았습니다.
이 벽화는 2019년 클롭 시절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을 때, 저널리즘 플랫폼인 ‘안필드 랩(The Anfield Wrap)’이 제작한 작품이었습니다. 아놀드의 성장을 기념했던 상징물이 이제는 배신의 흔적으로 변하고 만 거죠.
아놀드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리버풀은 여전히 제 마음속의 팀입니다”라고 말했지만, 후반 36분 그가 교체 투입되는 순간 터져나온 야유는 마치 “우리 생각은 너와 달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필드는 더 이상 그를 품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놀드는 단순한 유소년 출신 선수가 아니었다
아놀드는 리버풀 교외 웨스트더비(West Derby)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부터 리버풀 아카데미에서 성장한 리버풀의 아들입니다. 2019년,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이 유럽을 제패했을 때, 그는 리버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죠.
그가 올린 코너킥은 “안필드의 기적”으로 불렸고, “나는 단지 리버풀에서 태어나 꿈을 이룬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라는 벽화의 문구는 이때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팀을 떠나버립니다. 그것도 챔피언스리그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말이죠.

당시 아놀드는 재계약 협상에서도 돈 문제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단지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고 말했죠.
문제는 그 방식이었습니다.
리버풀은 아놀드를 마지막까지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재계약을 거부했고 결국 자유이적으로 레알 마드리드행을 택했습니다. 리버풀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죠.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우리를 버리고 떠나면서, 돈조차 남기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클롭이 떠난 직후, 리버풀은 새 감독 아르네 슬롯 체제가 막 자리를 잡으려는 시점이었죠. 팀 전체가 불안정한 때,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 팀에 냉정히 등을 돌린 셈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공식 입단 기자회견에서 “레알은 어릴 때부터 꿈꾸던 특별한 팀이었다”고 말한 게 팬들의 증오에 불을 질렀습니다.
아놀드가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안필드로 돌아온 밤, 도시가 숨을 죽인 건 어찌보면 당연했습니다.
슬롯의 아이들, 다시 ‘리버풀’이 되다

그런 긴장 속에 펼쳐진 경기는 의외로 1대 0 리버풀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한 골 차이지만 내용은 리버풀이 압도했죠. 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리버풀은 이 날 만큼은 전술적으로 완벽했습니다.
아르네 슬롯 감독은 포백을 높이 끌어올리지 않고, 중간 블록에서 압박을 가하는 ‘하이브리드 프레스’를 사용했습니다. 브래들리와 반다이크, 코나테는 비니시우스-음바페 라인을 철저히 고립시켰고, 미드필드의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결정적인 헤더로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사비 알론소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는 전진 패스 루트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주드 벨링엄은 브래들리-맥 알리스터 라인 사이에서 고립됐고, 음바페의 돌파 시도는 대부분 코나테에 막혔습니다.
레알의 유일한 위안거리라면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의 선방쇼 정도일까요.
그가 아니었다면 스코어는 아마 3대 0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슬롯 감독은 경기 후 “오늘 리버풀은 팀으로서 싸웠습니다. 브래들리는 압도적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클롭의 유산을 넘어, 챔피언스리그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코너 브래들리 - 안필드의 아이콘을 지우다

또한, 이 날 안필드는 ‘아놀드 시대의 종언’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앞서 슬롯 감독이 언급한 코너 브래들리(Conor Bradley)가 있었죠.
킥오프 전 스탠드에서는 이미 브래들리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리버풀 팬들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옮겨가 있었습니다.
브래들리는 경기 내내 비니시우스를 완벽히 봉쇄했습니다.
그의 태클은 정확했고, 예측은 빠르고 거칠었죠. 전반 23분, 비니시우스가 페널티 라인 근처에서 드리블을 시도하자 브래들리가 미끄러지듯 다리를 뻗어 공을 빼앗았습니다. 안필드가 폭발했습니다.
Conor Bradley 😤 pic.twitter.com/rjKfkGEWWS
— Liverpool FC (@LFC) November 5, 2025
후반 막판, 아놀드가 무의미한 크로스를 올린 뒤 역습이 전개되자, 브래들리는 반대편 터치라인에서 그 공을 지켜내며 비니시우스를 몸으로 밀어냈습니다.
그 장면은 리버풀 팬들에겐 상징적 의미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리버풀의 오른쪽’은 아놀드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우리의 소년이 아니다”
오늘 리버풀은 모든 걸 가져왔습니다.
아놀드를 이겼고, 동시에 그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알던 ‘리버풀’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X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꿈꾸던 소년이 이제 우리를 상대로 뛰지만, 이제 눈물은 없다. 모든 게 끝났다.”
또 다른 팬은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은 아놀드의 밤이 아니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한 밤이었다.”

경기 후 다시 X에 들어갔습니다.
팬들의 분노로 얼룩졌던, 아놀드 벽화 앞 하얀 페인트 자국이 복구된 사진이 올라왔더군요.
복구된 벽화는 리버풀 팬들의 복잡한 마음을 조용히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놀드에 대한 용서라기 보단 일단 ‘정리된 감정’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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