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한국프로야구)의 기아 타이거즈가 시즌 초 의외로 선전했다. 외국인 감독 매트 윌리엄스가 빠르게 한국야구에 적응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박준표-전상현-문경찬으로 이어진 막강한 승리계투조의 역할이 컸다. 국내 유력 일간지가 6월 23일 기아의 ‘문경찬’을 주제로 구원투수에 대한 이야기를 스포츠면 톱기사로 다룬적이 있다. 스포츠 전문 매체가 아닌 일반 신문이 당일 경기에 대한 속보나 뉴스가 아닌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문경찬은 압도적이었다. 기사가 난 그 날 그는 10세이브(세이브율 100%), 방어율 1.06을 기록하며 거칠것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은 7월 9일. 신문 기사가 나고 2주 가량이 흘렀다. 지금의 문경찬은 어떨까. 리그에서 가장 불안한 마무리 투수다. 불과 2주만에 말이다.
문경찬이 시즌 초 승승장구했던 비결은 ‘초구 스트라이크’와 노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을 수 있는 ‘커맨드’와 ‘뱃장’이었다. 9회 세 명의 타자만 상대하면 되는 마무리 투수에게 첫 타자와의 볼 카운트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문경찬의 9회 첫 타자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은 80%대에 육박했다. 심지어 그가 던진 모든 공들 중에 스트라이크로 꽂힌 수치는 75.3%다. 그런데 장점으로 꼽힌 스트라이크 비율이 이젠 독이 됐다.
문경찬은 지난 5일 창원에서 벌어진 NC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김태진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데 이어 나성범에게 끝내기 3루타를 맞고 무너졌다. 이 날 뿐이 아니라 이전 세이브 상황도 또 그 이전 세이브 상황에서도 나가 떨어졌다. 혹시 NC다이노스의 김태진이란 선수를 아시는지. 2015시즌 프로데뷔무대를 가진 그는 올해까지 5시즌을 뛰며 통산 6개의 홈런을 쳤다. 올시즌엔 문경찬에게 9회 투런홈런을 치기 전까지 단 한 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숫자가 그렇단 거다. 그런 타자가 상대팀의 가장 센 구원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근데 중계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그렇게 예쁜 직구를 못치는 타자도 있을까). 자, 문경찬은 왜 이렇게 맞아나간걸까.
문제는 직구다. 앞서 말했듯 그는 볼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끌기 위해 스트라이크 비중을 극도로 끌어 올린다. 문경찬의 직구 평속은 140.3~5km. 이 악물고 던지면 145이상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이 공들은 커맨드가 안돼 볼 판정을 많이 받는다. 포수 미트 한 가운데로 입장하는 직구의 구속은 136~138km대. 그러니 평속이 저정도 나오는게 맞다. 근데 그 직구의 속도가 어중간한건 둘째치고 쭉 뻗은 막대기 마냥 정직하게 날아온다. 공끝에 어떤 변화도 없단 말이다. 시즌이 중반으로 치닫는 지금, 이제 문경찬을 상대하는 타자들은 예쁜 직구를 그저 받아치면 된다. 어차피 그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들테니까.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만 칠 수 있는 히팅 머신 같은 직구를 못받아치는 타자라면 그것도 문제지 않나. 설상가상, 문경찬은 맞기 시작하면 표정이 얼고 절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멘붕. TV로도 다 보이는 그 표정을 상대라고 모를까.
그를 보며 뉴욕 메츠의 마무리 에드윈 디아즈가 떠올랐다. 2018시즌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보여준 디아즈는 그 해 오프시즌 막강한 불펜 구축을 원한 뉴욕 메츠가 데려갔다.
* 에드윈 디아즈 2018 시즌 성적 : 0승 4패 방어율 1.96 57세이브 (73.1이닝)
디아즈가 거둔 성공의 비밀은 투심 패스트볼. 158Km 가량의 패스트볼이 투심으로 꽂히다 보니, 포수 미트에 꽂히기 전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며 휘어진다. 같은 공을 세번 던져도 세번 다 헛스윙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서운건 이 ‘미묘한 변화’가 매번 같은 곡선과 방향을 일으키지 않고 항상 달랐다는 것.
그런 디아즈는 2019 시즌 처참하게 무너졌다.
* 에드윈 디아즈 2019시즌 성적 : 2승 7패 5.59 26세이브(58.0이닝)
디아즈가 몰락한 이유는 심플하다. 그가 자랑한 투심 패스트볼 끝에 변화가 사라졌다. 강력한 직구는 던지는 족족 맞아나갔고 변화구는 제구가 안되어 볼넷을 내주기 일쑤였다. 주자를 쌓은채로 홈런을 맞는 장면이 익숙해졌다. 마운드에서 고개를 떨구는 장면도 다반사였다.
투수들이 던지는 속구에는 대략 5종이 있다(포심, 투심 패스트볼, 싱커, 커터(컷 패스트볼), 스플리터). 이 중 공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은 속구가 투심 패스트볼이다. 디아즈나 문경찬은 다이나믹한 키킹 동작에 이어 공을 던지는 팔의 각도가 오버 스로와 사이드암 그 사이에서 시작한다. 이런 매커니즘을 통해 디아즈는 투심 패스트볼에 이상적인 ‘긁힘’을 만들어 2018시즌 성공을 거뒀다(물론 2019시즌엔 이전 시즌의 매커니즘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문경찬에게 필요한게 바로 이 ‘긁힘’을 통한 절묘한 공 끝의 변화다. 내가 문경찬의 친구라면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싶다. ‘경찬아 메이저리그 앱을 키고 2018시즌의 디아즈 경기들을 보며 연습해봐. 투구 동작이 너랑 비슷해. 제발 예쁜 직구만 던지지 말고’. 그런데 필자 생각에 문경찬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유는 9회에 올라온 그가 안타를 맞은 뒤에 짓는 표정을 보면 여러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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