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열리기 전 농구 팬들이나 전문가들은 저마다 예측을 내놓으며 우승후보를 논한다. 2019-2020시즌을 앞두고는 많은 팀들이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팀들이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앤서니 데이비스를 영입한 LA레이커스,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로 스쿼드를 채운 LA클리퍼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팀이 보얀 보그다노비치와 리그 수준급 포인트 가드인 마이크 콘리 영입에 성공한 유타 재즈(Utah Jazz)였다. 이를 두고 ‘유타 재즈가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맞추는데 성공했다’식의 보도가 잇따랐다.
▣ 존재감이 사라진 마이크 콘리
그러나 정규 시즌을 치러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콘리가 과연 재즈에 맞는 조합인가’란 의문을 던졌다. 리딩, 슈팅, 수비 등 콘리가 장기로 내세울 수 있는 여러 영역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재즈에 많았기 때문이다. 시즌 내내 먹튀 아닌 먹튀 취급을 받았던 마이크 콘리는 코트에 서 있어도 그의 존재감은 멤피스 시절과 전혀 달랐다. 그리고 덴버 너겟츠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아이의 출산으로 인해 출산휴가를 떠나자 그의 가치 평가는 바닥을 찍었다. 콘리가 결장한 채 치러진 1~2차전 재즈의 경기력을 보면서 팬들은 ‘콘리는 있으나 마나 아니야’라며 그의 빈자리를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 아빠의 존재감을 보여준 마이크 콘리
스포츠 판에도 ‘분유 범프’란 말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아빠선수의 반짝 활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3차전(22일)에 복귀한 마이크 콘리는 ‘분유 범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인용될 경기를 펼쳤다. 유타 재즈와 덴버 너겟츠의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차전 경기에선 ‘콘리에 의한 콘리를 위한 콘리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는 3점슛 7개(8개시도)포함 27득점 4어시스트로 재즈의 공, 수를 진두지휘했다. 멤피스 그리즐리스 시절 보여주던 전성기 콘리 그 모습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코트에서 발휘했다. 던지는 대로 꽂히는 3점슛은 콘리의 입가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했고, 그의 쇼타임에 재즈 팀 전체가 동요했다. 미첼, 고베어, 클락슨 등 재즈 동료들은 콘리의 쇼타임을 즐기기만 하면 됐다. 재즈는 이 날 경기에서 3쿼터 종료 직후 주전선수들과 주요 벤치선수들 모두 퇴근시키며 122 대 87로 승리했다. 플레이오프 37점차 승리는 유타 재즈 구단 프랜차이즈 기록이다.
▣ 재즈의 변조, 얼리 오펜스
정규시즌 중 유타 재즈는 다득점을 올리는 팀이 아니었다. 콘리와 조 잉글스, 미첼 등의 리딩에 이은 완벽한 공격 조립과 패턴 플레이를 추구하는 퀸 스나이더 감독의 전술에 기반한 팀 컬러 때문이다. 게다가 루디 고베어를 앞세운 효율적인 디펜시브 시스템은 이 팀이 애당초 득점화력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팀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러나 너겟츠와의 시리즈 2차전부터 재즈는 180도 달라졌다. 스나이더 감독이 가져온 변화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슈팅을 던지는 것’. 잉글스와 미첼은 불필요한 드리블을 줄이고 패싱 2~3번 만에 1차 슈팅을 시도했다. 거기에 3차전에는 콘리까지 가세해 재즈답지 않은 얼리 오펜스를 36분 내내(3쿼터까지, 4쿼터는 가비지)보여줬다. 패턴 대 패턴 일변도로 맞서며 네게츠가 승리한 1차전을 제외하고, 너게츠의 마이크 말론 감독은 2, 3차전에서 재즈의 화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 재즈에 잘 맞는 조합, 마이크 콘리
앞서 말한대로 그동안 마이크 콘리가 유타 재즈에 맞는 조합인가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콘리가 아닌 누구라도 콘리 수준의 역할을 재즈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수준의 역할에 그가 받는 몸값이 과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스나이더 감독이 얼리 오펜스로 시스템을 바꾼 3차전만 놓고 보면 콘리는 재즈에 꼭 필요한 선수가 돼 버렸다. 얼리 오펜스를 위해서는 리딩이 가능한 여러 명의 선수가 필요하다. 정통 포인트 가드 한 명을 내세워선 4쿼터 내내 스페이싱을 위한 빠른 공격템포를 유지할 수 없다. 미첼, 잉글스보다 한 단계 앞선 리딩 능력을 가진 콘리까지 가세하자 완성된 공격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24분을 뛰며 27득점에 87.5%의 3점슛 효율을 보여준 콘리는 멀고 긴 길을 돌아 재즈 팬들의 환영을 받게 된 듯하다. 한국 정서에 새끼가 태어나면 복을 안고 온다는 믿음이 있는데 콘리의 아들이 그런 복을 가져다 준건 아닐까. 시즌 내내 계륵 취급 받던 미운 오리에서 드디어 백조가 된 아빠 콘리에게 축하를 전하며 다음 경기도 기대해본다. 그리고 경기 내내 얼빠진 표정으로 카메라에 수차례 단독샷을 받은 마이크 말론 감독이 재즈의 공세를 막을 해법을 들고 올지 4차전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