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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 EPL/Tottenham Hotspur FC

6월 17일 손흥민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by 더콘텐토리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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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었던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중단 발표 후 3개월 가량이 흘렀다. 오직 주말에 있을 EPL만을 기다리며 각자의 일터에서 힘들게 일했을 잉글랜드의 많은 축구팬들, 그리고 전 세계의 EPL팬들에겐 코로나 만큼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들만의 작은 세계를 잃었고 또 시간은 그렇게 지루하게 흘러갔다.

그동안 EPL의 결과와 뒷얘기들을 숨가쁘게 전하던 미디어들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각본없는 드라마들이 채웠던 지면들은 축구스타들의 격리생활과 과거의 명승부 등으로 대체되었다. 잊혀졌던 스타들이 소환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트리비아'에 지친 독자들은 기사를 외면했고 스포츠면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사회면에 서서히 지면을 내주었다. 코로나 정국에 EPL을 좋아하는 팬들, 기자들, 스포츠 미디어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전 세계 프로 스포츠계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 NBA도 8월 1일 재개를 논의 중이고 독일 분데스리가는 이미 지난 5월 16일 재개되었다. 그리고 6월 17일, 모두가 기다리던 EPL이 재개된다.

EPL이 다시 시작된다고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과 같을 순 없다. 무엇이 달라질까. 당연한 얘기지만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진다. EPL의 각본없는 드라마에 목말라 있을 팬들에겐 그 게 대수랴.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는 사라지지만 선수들의 뜨거운 숨소리는 안방에 전해질 수 있다. 경기는 중립 경기장에서 개최된다. 영국 경찰의 요청에 따른 조치다. 물론 EPL 사무국이 중립 경기의 최소화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교체 선수 숫자도 늘어난다. 선수 보호를 위해 교체인원을 한시적으로 5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앞서 재개한 분데스리가도 교체인원을 5명으로 늘렸다. 단, 시간끌기를 방지하기 위해 횟수는 3회로 제한했다. 5명을 모두 교체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2~3명씩 투입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교체 명단은 7명에서 9명으로, 엔트리는 18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난다. 선수들은 구단 버스가 아닌 자신의 차를 이용해 경기장으로 이동한다. 더불어 라커룸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경기에 뛸 수 있는 복장을 착용한 채 이동해야 한다. 경기가 끝난 후 열리는 공식 기자회견도 '영상 통화'로 대체한다.

 

 

 

 

무엇보다 부상선수가 모두 돌아온다는 것이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강제 휴식기를 가지면서 역설적으로 부상자들이 많았던 팀들에게 기회가 열렸다. 이는 순위권 경쟁에 있어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우승 경쟁이야 어차피 리버풀의 우승으로 싱겁게 끝나겠지만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진출싸움은 더욱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다. 잉글랜드 언론에서 꼽는 가장 혜택 받은 팀은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이다. 시즌 중 팀의 핵심 공격수인 손흥민과 헤리 케인(Harry Kane)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해 팀 경기력이 거의 붕괴 수준까지 내려갔다. 두 선수가 빠진 뒤 모든 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손흥민의 이탈이 뼈아팠다. 손흥민이 공격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팀에 기여하던 바가 컸었다. 손흥민의 이탈로 토트넘은 수비조직력까지 와해되며 어려움을 겪던 터였다.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토트넘이 현실적으로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달린 7위를 노린다면 그 경쟁상대는 얄궂게도 북런던 라이벌 아스널이다. 아스널은 토트넘과는 반대로 수비조직이 와해됐었다. 코로나 휴식기를 마치고 키어런 티어니(Kieran Tierney), 소크라티스(Sokratis)와 시코드란 무스타피(Shkodran Mustafi), 엑토르 베예린(Hector Bellerin) 등 주전 수비자원이 온전히 돌아온다면 팀은 천군만마를 얻게 될 것이다. 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Pierre Emerick Aubameyang), 알렉상드르 라카제트(Alexandre Lacazette)로 대표되는 공격진의 위력은 이미 상당해 해볼만하다.
두 팀 사이의 경쟁에 뜬금 없이 맨체스터 시티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재정룰 위반에 따라 맨체스터 시티가 챔피언스리그 출전정지 징계를 받게 되면 올시즌 5위도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딸 수 있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57점), 레스터 시티(53점)가 한 두발 앞선 상황에서 첼시(48점)를 제외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45점), 울버햄튼(43점), 셰필드 유나이티드(43점), 토트넘(41점), 아스널(40점)의 승점차가 크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토트넘과 아스널의 경쟁은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아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경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위권 팀들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도 물론 뜨겁다. 무엇보다 폴 포그바(Paul Pogba)가 발목수술 후 복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에 귀추가 주목된다. 포그바는 올 시즌 7경기 출전에 그칠 정도로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재활 중 불성실한 태도와 잦은 이적설로 팬들의 신뢰를 잃었지만, 몸 상태가 온전한 포그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지난 1월 팀에 합류한 브루노 페르난데스(Bruno Fernandes)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브루노 페르난데스의 합류 후 공수 밸런스가 안정되면서 코로나 사태 이전 11경기 무패(8승 3무)를 기록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베르바토프도 "페르난데스와 포그바가 함께 경기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조합일지 흥미로운 부분이다. 정말 좋은 파트너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포그바의 복귀는 팀 전체에 큰 힘이 되고 자신감을 줄 거라고 확신한다"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첼시는 부상 복귀자가 많다. 루벤 로프터스치크(Ruben Loftus-Cheek)가 돌아온다. 포워드 태미 에이브러햄(Tammy Abraham)과 윙어 크리스티안 풀리시치(Christian Pulisic)의 복귀 역시 든든하다. 하지만 캉테가 변수다. 은골로 캉테(N`Golo Kante)는 시즌 재개 3주를 앞두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여전히 우려된다며 훈련 복귀를 거부했었다. 프랭크 램파드 감독은 훈련을 거부해온 캉테와 최근 1대 1 면담을 나눴다. 램파드 감독과 대화를 나눈 캉테는 코밤(Cobham, 첼시 훈련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동료들과 함께 팀 훈련에 합류할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코밤에서 개인 운동을 하며 몸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겠다고만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전 에이전트와의 다툼으로 법정 출두 명령을 받기도 했다. 첼시 중원의 핵인 캉테의 정상적인 복귀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경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PL 우승 경쟁은 오히려 싱겁다. 리버풀과 2위 맨체스터 시티, 3위 레스터 시티와의 승차가 상당하다. 리버풀의 첫 우승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리버풀은 잔여 9경기 중 두 경기만 승리하면 자력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맨체스터 시티가 첫 경기에서 패배라도 하게 되면 EPL 재개 첫 경기 후 우승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잉글랜드 축구를 호령했던 리버풀의 EPL 출범 후 첫 우승이 이렇게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잉글랜드 축구 우승 횟수도 EPL 출범 이전 리버풀 절대 우위에서 이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위를 내주게 되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이라는 별명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 해 첫 우승을 노렸지만 승점 1점차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며 리버풀 팬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올 시즌 초부터 선두 자리를 지키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리그가 잠정 중단되기 전 29경기에서 27승(1무 1패)을 쓸어담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30년만의 리그 정복을 눈앞에 뒀다. 2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승점차는 무려 25점. 앞으로 2승을 추가하면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리버풀의 걱정은 오히려 경기장 밖에 있다. 지금으로선 지역 라이벌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만에 하나 이 경기에서 우승이 확정되면 열정이 지나치기로 유명한 리버풀 팬들이 흥분해 리버풀 시내로 쏟아져나올 것이고 에버튼 팬들과의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첫 우승이 하필 지독한 라이벌과의 경기라 사태가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 우승 퍼레이드도 불가하다. 코로나 탓에 우승을 해도 퍼레이드나 대규모 축하 행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십년을 꿈꾸어 온 첫 우승인데 중립지역 무관중 경기에 퍼레이드도 없는 싱거운 우승이 될 모양새다. 우승경쟁도 싱거운 마당에 올 시즌 리버풀의 우승은 이래 저래 싱거운 우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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