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 1일(한국 시각) 바이에른 뮌헨과의 아우디컵 결승전. 토트넘은 신인 선수들에게 대거 기회를 부여하기로 한다. 경기 전 다니엘 레비회장이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라커룸을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20세의 한 어린 선수가 당당히 레비 회장의 눈을 마주 보고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자펫 탕강가(Japhet Tanganga). 콩고계 영국인 부모를 둔 20세 센터백은 그렇게 당당히 자신만의 성인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1999년 3월 31일 런던 동부 해크니 지역에서 태어난 탕강가는 10살 때 토트넘 유스 아카데미에 들어가 축구를 시작한다. 축구를 곧잘해 16세부터 20세까지는 연령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활약한다. 2017년에는 툴롱컵에 출전해 잉글랜드 대표에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 2014년 한국 영덕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축구대회에서는 MVP를 차지해 국내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탕강가의 자신감은 어릴 때부터 체득한 큰 무대 경험에서 비롯한다.
20세 이하 국가대표팀에서의 맹활약으로 탕강가는 유럽 여러 구단의 표적이 된다. 탕강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지난 여름 프리시즌 경기인 아우디컵(Audi Cup)에서였다. 그는 호날두의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고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 경기에서 토트넘은 유벤투스를 상대로 3대 2로 승리한다. 탕강가는 9일 뒤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도 아자르를 상대로 비슷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 경기 역시 토트넘이 레알에 1대 0으로 승리했다. 두 경기는 탕강가에게 있어 쇼케이스나 마찬가지였다.
탕강가는 현대축구의 흐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올드스쿨 스타일의 수비수다. 20세 이하 잉글랜드 감독으로 그를 지도했던 키스 다우닝(Keith Downing)은 디 애슬래틱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피지컬적인 도전을 좋아하는 진짜배기 수비수다. 요즘에는 그렇게 수비하는 수비수가 드물다. 박스에 머무르길 좋아하고 볼처리를 확실하게 하는 올드스쿨 수비수다.”라고 평가했다.
탕강가는 일대일 상황에서의 위치 선정도 매우 좋다. 지난 ICC(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맨유와의 경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앙토니 마샬이 탕강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슛찬스를 잡았지만 탕강가의 적절한 위치선정으로 마샬은 볼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탕강가는 한 마디로 무리뉴 감독이 좋아하는 수비수다.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에서의 첫 트레이닝 세션에서 "아우디컵에서 호날두를 마크한 탕강가의 플레이가 인상 깊었다"며 코칭 스태프에게 탕강가를 콕 찍어 칭찬했다.
무리뉴 감독의 칭찬은 빈 말이 아니다. 탕강가가 무패행진을 걷고 있는 리그 선두 리버풀전 선발로 나오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탕강가의 리버풀전 선발은 많은 토트넘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 때까지 탕강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출전한 경기는 콜체스터와의 카라바오 컵 출전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들즈브러와의 FA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상황이라 토트넘 팬들은 무리뉴 감독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탕강가는 무리뉴 감독이 내세운 회심의 카드 답게 전반 중후반까지 맹활약했다. 전반 2분 만에 리버풀의 득점과 다름 없는 슈팅을 몸을 던져 막아냈고 특유의 피지컬과 스피드를 앞세워 리버풀 공격수 사디오 마네의 전진을 여러 차례 막아섰다.
그러나 전반 37분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박스 안에서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바디 페인팅에 속아 결정적인 슈팅 기회를 내줬다. 피르미누는 환상 터치로 탕강가를 제치고 토트넘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들어서도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성급한 판단 미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후반 중반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등 멀티 능력도 뽐냈으나 전반적으로 합격점을 주기엔 아쉬웠다.
하지만 팬들의 실망을 환호로 바꾸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탕강가는 15일(한국 시각) FA컵 3라운드 미들즈브러와의 재경기에 선발로 맹활약했다. 더욱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과감한 드리블 돌파를 통해 최전방까지 올라왔고, 위협적인 슈팅을 때리기도 했다. 수비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활약을 펼쳤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후 "나는 그를 믿는다. 경기를 읽는 법과 배우는 법을 알고 있다. 모든 정보를 흡수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FA는 경기 후 탕강가를 공식 MOM(Man Of the Match)으로 선정했다.
토트넘 유스 코치에 따르면 그가 축구를 시작한 열 살 때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실력이 만개한 건 불과 4~5년 사이다. 탕강가를 지도했던 키스 다우닝 감독은 그에 대해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설명한다. 그는 “탕강가는 매우 성숙하고 근면하고 열심히 뛴다.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영리한 선수라 금방 성장할 것이다.”고 칭찬한다.
그러한 영리함이 바로 무리뉴 감독과 토트넘 구단이 그와의 계약을 연장하려는 이유다. 이미 지난 여름 챔피언십 일부 구단과 이탈리아, 덴마크의 복수 구단에서 탕강가에 대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1월에 임대를 떠나기로 계획 되어 있기에 무리뉴 감독과 토트넘 구단은 서둘러 그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탕강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다. 현대축구에서 수비수에게 요구하는 볼 배급 등에서는 약점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리고 배우며 발전하는 걸 즐긴다. 빠른 시간에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이후 4경기에서는 벤치에 머물렀지만 탕강가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 무리뉴 감독이 스퍼스에 온 이후로 벌인 가장 큰 도박이 팀과 그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탕강가, 그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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