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없었던 이적, 모건 깁스-화이트 이적 소동이 노팅엄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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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없었던 이적, 모건 깁스-화이트 이적 소동이 노팅엄에 남긴 것

by 더콘텐토리 2025.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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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오가며 이동하는 건 축구의 일부지만, 리버풀이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은 이곳에 남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2011년 1월 31일,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이 이 말을 꺼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리버풀 팬들은 충격에 빠져 있었고, 그는 그들에게 작은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려 한 것이었겠죠. 당대 최고의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가 첼시로 떠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레스의 당시 이적료는 무려 5000만 파운드(약875억원). 프리미어리그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거래였습니다. 리버풀처럼 전통 있는 클럽을 떠나, 더 많은 트로피 가능성을 품고 있던 첼시를 택한 그의 결정은 많은 팬들에게 ‘배신’이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리버풀은 정말 이렇게 쉽게, 경쟁 클럽에 핵심 선수를 내줘야만 하는 위치인 걸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팬들은 고개를 떨궜고, 클럽의 위상에도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과거의 영광이 화려했던 팀의 팬들일 수록 팀의 위상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노팅엄 포레스트도 바로 이러한 팀에 해당하죠. 

노팅엄 포레스트는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을 2회, 그것도 연속으로 제패한 위대한 역사를 품고 있는 팀입니다. 물론 그건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이야기이지만 말이죠.

 

이제는 쇠락한 이 팀의 팬들에게 있어 가장 큰 아픔은, 역시나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선수들이 하나둘 떠나는 일입니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유망주들이 구단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카드처럼 매각되곤 했습니다.

 

로이킨, 브레넌 존슨, 매티 캐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시린, 이별의 역사입니다. ‘핵심 자산 매각’은 어느덧 노팅엄의 유산처럼 여겨졌고, 팬들은 몇 년, 아닌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된 이런 패턴에 서서히 무감각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7월 10일, 토트넘이 모건 깁스-화이트의 영입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보도되자, 노팅엄 포레스트 팬들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절망'이었을 겁니다. 

 

이미 올여름에도 안토니 엘랑가가 5200만 파운드(약 910억원)의 이적료를 남기고 뉴캐슬로 떠났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의 대가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깁스-화이트마저 떠나게 된다면, 지난 시즌의 기적은 '한여름밤의 꿈'으로 남고 마는 거죠.

 

토트넘은 깁스-화이트를 데려오기 위해 울브스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할 당시 책정된 바이아웃(6천만 파운드)을 활용했습니다. 최근 과열된 이적 시장으로 인해, 이적을 막기 위해 책정한 금액이 오히려 매력적인 금액으로 보인 것이죠. 이 조항은 이미 계약서에 명시돼 있었기에, 노팅엄 포레스트가 이를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노팅엄 포레스트가 토트넘에 이의를 제기하며 “판매 불가” 방침을 외쳤지만, 팬들 사이에는 체념에 가까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또다시 과거가 반복될 것이라 여긴 것이죠.

 

이 때, 이 흐름에 제동을 건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 출신 미디어 재벌이자 노팅엄 포레스트의 구단주 에반젤로스 마리나키스였습니다.

그는 깁스-화이트를 노팅엄 그 자체로 보았습니다. “그는 단지 재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성격과 멘탈리티까지 탁월하죠. 우리 구단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승리를 갈망하며, 재능 있고, 야망 있으며, 두려움 없고,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선수입니다.”

 

팬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깁스-화이트가 모든 경기에서 완벽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팬들이 진짜로 사랑한 것은, 그가 경기 중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려는 ‘태도’였습니다. 그 열정과 도전 정신만으로도, 그는 팬들에게 벅찬 감정을 안겨주는 선수였습니다.

마리나키스 구단주는 깁스-화이트에게 그가 이 구단에서 어떤 존재인지 적극적으로 강조했습니다. 팬들의 사랑, 팀 내 위상,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에서의 상징성. “토트넘에서 과연 이런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이 그를 설득한 핵심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구단은 기존의 급여 상한선을 깨고 새로운 3년 계약을 제시합니다. 역사적인 재계약은 포르투갈 프리시즌 캠프에서 단 30분 만에 속전속결로 체결됐습니다. 깁스-화이트는 노팅엄 포레스트 역사상 최고 연봉자가 됩니다.

 

너무나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토트넘 회장 다니엘 레비조차, 이번엔 마리나키스의 단호함 앞에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리나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깁스-화이트는 이미 전설입니다. 나는 팬들에게, 그리고 다른 구단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전설을 대할 땐, 전설에 걸맞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그리고 강조합니다.

“내가 이 위대한 클럽을 운영하는 한, 우리의 동의 없이 선수를 뺏어가려는 그 어떤 접근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히 깁스-화이트라는 선수를 지켜낸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전 같았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이별을, 이제는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클럽'이 되었다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팬들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았고, 클럽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젠가 깁스-화이트도 팀을 떠나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구단이 주도권을 쥐었고, 팬들은 오랜만에 팀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았습니다.

 

이적 없었던 이적 소동.

깁스-화이트의 '이적 사가'가 남긴 것은 달라진 노팅엄의 '출발선'입니다.

 

 

에필로그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토레스가 떠난 리버풀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요? 

토레스가 팀을 떠난 바로 그 날, 리버풀은 아약스로부터 한 우루과이 출신 스트라이커를 데려왔습니다. 이름은 루이스 수아레스. 당시 이적료는 약 2300만 파운드(약 427억 원). 토레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수아레스는 리버풀에서 110경기 69골을 기록하며, 토레스가 남긴 102경기 65골과 비슷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팬들의 체감은 전혀 다릅니다. 수아레스는 리버풀의 심장처럼 뛰었고, 그 에너지와 날카로움, 투지는 안필드를 열광시켰습니다.

 

결국 리버풀팬들은 이렇게 말하게 되죠.

 

“우린 업그레이드됐다.”

 

반면, 첼시로 간 토레스는 좀처럼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기대는 컸지만 그는 부진했고, 커리어는 점차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축구는 늘 그런 식입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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