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를 보고 토트넘에 대해 느낀 소감을 세 줄로 표현한다면, 이렇습니다.
토마스 프랭크 감독은 '찐'이다.
선수단의 뎁스와 퀄리티가 떨어진다.
올 해 쉽지 않겠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초점은 UEFA 수퍼컵의 경기 결과가 아닙니다. 토트넘 그 자체에 대한 얘기입니다.
토트넘 핫스퍼(Tottenham Hotspur)는 오래전부터 ‘애매한 빅클럽’이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아스널보다 리그 우승 횟수는 훨씬 적으면서도 ‘북런던 라이벌’을 자처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재정 규모는 작으면서도 유럽 최신식 구장을 가졌다며 과시합니다. 이 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빅클럽에 왔다”고 기뻐하지만, 이상하게도 팀을 떠난 후에야 우승 트로피를 품었습니다. 오늘 경기도 그런 토트넘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경기 결과는 승부차기 끝 아쉬운 역전패(공식경기 결과는 무승부). PSG의 점유율 우세(PSG 67 : 33 토트넘)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이 매우 준비를 잘했고 선전한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수퍼컵이라는 대회는 유럽 최고의 트로피 홀더들이 자웅을 가리는 이벤트성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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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회에서조차 역습 기반 수비 축구를 하다 그것도 역전패했다면, 토트넘은 응당 그 자리에 설 팀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이적한 지금, 토트넘이라는 구단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토트넘의 애매한 위치는 10년 전, 독일에서 손흥민이라는 소년이 런던으로 건너오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손흥민은 이미 한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고, 첫 시즌에는 적응기가 필요했지만 곧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섭니다. 토트넘은 그 ‘세계적인 자산’을 등에 업고 경기력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여름 투어에서 손흥민 한 명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 폭발적으로 팔려나간 유니폼, 아시아 시장이라는 거대한 판로… 그 모든 것이 토트넘의 거품을 불려주었습니다.
이 착각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사건이 바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입니다. 손흥민, 해리 케인 등 당시 월드클래스급 선수들도 물론 있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토트넘이 결승에 오를 만한 전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토트넘은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오히려 '감독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후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팬들의 ‘윈 나우(Win Now)’ 성화에 못이기며 무리뉴, 콘테 등 감독만 계속 갈아치웠습니다. 정작 선수단 퀄리티 강화는 뒷전이었죠. 그 결과, 여러 감독의 스타일이 섞여, 사 온 선수들은 처분조차 어려운 짐이 되었고, 히샬리송, 브레넌 존슨, 마티스 텔 등 반쪽짜리 전력에 말도 안되게 큰 돈을 쓰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어쩌면 손흥민이 떠난 지금이 토트넘에겐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습니다. 토트넘은 인기 구단이지 ‘빅 클럽’이 아닙니다. '빅 6(빅 식스)'라는 애매한 울타리에 묻어가며 빅 클럽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2002 월드컵 이전까지 단 1승도 없던 대한민국이 4강 신화 이후 강팀인 양 착각하다 시간을 허비하며 일본에 뒤처진 것처럼, 토트넘도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다 추락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유로파 트로피가 가렸던 현실(강등권 바로 위인 리그 17위)을 냉정히 바라봐야 합니다.
토트넘이 본받아야 할 모델은 첼시입니다. 무리뉴 시절 드록바,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 첼시는 물론 빅클럽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첼시는 한동안 그 위상을 잃었습니다. 그 첼시가 몇 년간 이름값보다는 유망주에 과감히 투자하며 ‘미래의 팀’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 기반은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파 클럽 월드컵에서 최강 PSG에게 일격을 가하고 거둔 우승은 첼시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위안을 찾자면, 토마스 프랭크 감독의 전술적 유연함과 지도력입니다. 경기 플랜 자체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고, 상대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가 뚜렷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선수단의 뎁스가 현저히 부족했습니다. 교체로 투입된 PSG의 이강인이 경기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장면은, 두 팀 전력의 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토트넘은 이제 장기적인 시각으로 팀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유로파 트로피에 취해 현실을 외면한다면, ‘애매한 빅클럽’이라는 오명이 문제가 아니라, ‘추억 속의 클럽’으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수퍼컵의 역전패는 서막에 불과합니다. 진짜 이야기는, 더 길고 더 냉혹하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