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밀란 알레산드로 플로렌치(Alessandro Florenzi)가 27일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AC 밀란과 PSG 소속의 플로렌치가 더 익숙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뼛속까지 '로마인'입니다. 그는 다른 로마 출신 스타인 토티나 데 로시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현지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플로렌치가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남긴 선수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그는 단순히 '클럽을 위해 뛴 선수'가 아니라, '도시와 구단의 정체성을 이어주었던 존재'로 기억됩니다.

오늘날 축구가 점점 더 기업화되고 있다고 하죠. 선수와 구단을 이어주던 끈끈한 유대와 지역적 자부심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축구를 축구답게 만들던 요소들도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AS 로마는 이탈리아 축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도 '로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비해, 유벤투스, 밀란, 인테르처럼 막대한 부를 갖거나, 수많은 트로피를 가진 빅클럽은 아닙니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든든한 가족이자 언제나 달려 가고픈 안식처와 같은 존재입니다.
AS 로마 현지 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 출신이 팀의 주장을 맡는 게 왜 중요한지 몰라도,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알레산드로 플로렌치는 로마에 몸담고 있는 동안, 이 말을 몸소 증명한 선수였습니다. 승리했을 때도, 패배했을 때도, 팬들은 그가 진심으로 로마를 사랑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터치와 골, 미소와 눈물 속에서 팬들은 로마 그 자체를 보곤 했습니다.
플로렌치를 떠올릴 때 팬들이 가장 먼저 기억하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득점 후 관중석에 있던 할머니에게 달려가 포옹하던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이 세리머니는 로마의 주장이 어떤 뿌리를 지니고 있으며 팬들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주변 사람들 모두가 가족처럼 반기는 장면 멋지지 않나요!!).

2015년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를 기억하는 팬들도 많습니다. 골키퍼가 나온걸 확인하고 하프라인 근처에서 쏘아올린 중거리슛이 정확히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가 로마팬들을 거의 실신에 빠뜨렸던 바로 그 경기 말이죠.

로마팬들은 2012년, 즈데네크 제만(Zdeněk Zeman) 감독 아래에서 48번 셔츠를 입고 첫 발을 내딛던 그를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토티와 데 로시를 따라다니는 마냥 어린 동생 같은 선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팀의 퍼즐을 완성하는 중요한 조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로마 팬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화려한 기록이나 트로피가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보여준 진지한 자세와 태도 때문입니다.
경기 전 훈련장에서 어린 선수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질문과 고민에도 성심껏 조언을 건넸습니다. 경기 후에는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나누며 로마라는 도시와 클럽이 지닌 ‘지역적 정체성’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카리스마도, 불굴의 투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인이 왜 로마의 주장을 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클럽이 흔들릴 때 누구보다 고민하고, 누구보다 앞장서 나서는 모습에 팬들은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런 그가 왜 로마를 떠나게 되었을까요. 연봉인상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겪은데다, 파울로 폰세카 감독 체제에서 존재감이 예전만 못해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죠. 로마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지만, 구단은 그를 장기적인 주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뒤 이적을 알아보는 과정에서는 로마팬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유벤투스와 접촉하는 등 팬들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진성 로마팬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멀리서 그의 은퇴 소식이 전해진 지금, 로마 현지 언론과 팬들은 요란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토티나 데 로시처럼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지는 않지만, 플로렌치는 로마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가치를 구현한 또 다른 '로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록 속 숫자보다, 팬들의 기억 속 감정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