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에서 ‘악동’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대체로 이 선수 떠올리는 팬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매니 마차도(Manny Machado).
마차도는 특히 다저스 팬들에겐 악동을 넘어 악당처럼 그려지죠. 여러 사연과 사건이 있었지만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일은 지난 포스트시즌 때 생긴 데이브 로버츠(Dave Roberts) 감독과의 언쟁이었죠. 빅찬스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설 때도 아쉬운 표정을 짓기 보다는 풍선껌을 크게 불어대며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스웨거(Swagger) 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마차도도 따뜻하고 정 많은 플레이어입니다. 오늘은 까마득한 야구 후배를 향한 매니 마차도의 지긋한 애정이 깃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가 지난 9일 펫코파크(Petco Park·파드리스 홈구장)를 방문해 원정 시리즈 오프닝 게임을 치르던 날이었습니다. 1회초 타석에 들어선 살 스튜어트 주니어(Sal Stewart Jr)가 데뷔 2호 홈런을 때려냅니다. 파드리스 홈팬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했던 신예 스튜어트는 다소 얼어 붙은 표정으로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2루를 돌아 3루에 다다를 때, 스튜어트의 얼굴엔 미소가 살짝 돋았고 갑자기 오른 팔을 번쩍 들더니 손목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선보였습니다. ‘대체 저게 뭐지’라는 반응들이 구장을 채웠죠. 이 치기 어린 세리머니의 대상이 매니 마차도였으니 어리둥절한 반응은 커질 수 밖에요.
카메라에 잡힌 마차도의 반응이 어땟을까요? 누구도 예상 못한 표정이었습니다. 마차도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스튜어트를 바라봤습니다. 마차도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 어린 친구들이 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리그에서 뛰던 어린 시절엔 홈런을 치고 방망이를 던지기만 해도 욕을 먹었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차도가 스튜어트의 세리머니를 보고 흐뭇해 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실, 스튜어트의 행동은 파드리스와 마차도를 향한 ‘도발’이 아니었어요. 마차도를 향한 존경의 표현이었고, 애교 섞인 어리광이기도 했습니다. 마차도와 스튜어트는 아주 오래도록 인연을 맺어온 멘토와 제자와 같은 관계였습니다. 이들의 따뜻한 관계가 시작된 지점을 찾기 위해선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갑니다. 당시 신시내티 레즈 1루수로 뛰던 선수는 욘더 알론소(Yonder Alonso)였습니다. 이 때 당시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뽑힌 마차도는 알론소와 함께 훈련하고 있었죠. 둘은 나중에 한 가족이 됐습니다. 마차도가 알론소의 여동생과 결혼했기 때문이죠.
살 스튜어트의 아버지인 살 스튜어트 시니어는 이 때 마이애미의 한 학교에서 야구 행정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쿠바에서 이민 왔지만 특이하게도 MLB보다는 NBA에 반했었죠. 하지만 그의 아들 스튜어트 주니어는 쿠바 뿌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야구에 푹 빠졌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의 외모를 한번 보세요 짙은 콧수염에 풍성한 곱슬머리는 누가 봐도 70~80년대 올드스쿨 메이저리그 플레이어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6피트 1인치(185cm)에 224파운드(104kg)나 되는 체격은 그 시절 향수를 더 자극하죠.

스튜어트 시니어가 지도하고 있던 한 학생이 욘더 알론소 가족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알론소와 스튜어트 시니어 가족도 서로 알고 지내게 됐답니다. 이 인연으로 스튜어트 시니어는 알론소에게 아들을 소개했습니다. “이 꼬마가 야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데, 잘 봐주세요”라고 하면서요. 알론소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엄청 칭찬하길래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죠. 고작 열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스윙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열살짜리 꼬마에게 뭐라 특별히 해줄말이 없어서, 야구를 계속 즐겨보라는 말 밖에는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스튜어트 주니어는 알론소를 무척 반가워했지만 소년이 만나고 싶어한 선수는 따로 있었습니다. 알론소의 매제, 매니 마차도였습니다. 알론소는 스튜어트 주니어의 소원을 들어줬죠. 당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뛰고 있던 마차도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것입니다. 스튜어트 가족은 마이애미에서 볼티모어로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알론소로부터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차도는 열살 소년에게 이것저것 자세하게 야구에 대한 노하우를 이야기해 줬습니다. 커가면서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고, 어떤 학교에서 무슨 포지션으로 활동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짚어줬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는 마차도의 조언을 새겨 듣고 웨스트민스터 크리스천 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노력했죠. 조금씩 잠재력을 인정받은 그는 미국 내 야구 최고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밴더빌트 대학 진학을 확정 받을 정도로 훌륭한 야구 선수로 성장해 갔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는 어느 새 십대 후반에 이르렀고, 이 기간 마차도와의 인연은 더 깊어졌습니다. 마차도의 오프시즌마다 함께 훈련하는 관계까지 발전했죠. “욘더 삼촌이 생각하기에 제가 마차도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했을 때 저를 불러줬습니다. 마차도와 함께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거죠”라고 스튜어트 주니어가 그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마차도와 훈련하면서 스튜어트 주니어는 알루미늄 배트를 내려놓고 나무 배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차도는 “그 아이는 원래 타격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땐 어린 꼬마였는데 그 때도 배트 스피드가 돋보였고, 임팩트 순간에 힘을 실어보내는 폭발력도 있었죠. 타구음이 남달랐다니까요”라며 스튜어트의 소질을 평가했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는 “저는 단 한번도 욘더와 마차도를 만나 게 된 귀한 인연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새겨 들었습니다. 야구에 대한 것부터 인생에 대한 조언까지요”라고 했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국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됐습니다. 시니어 시즌에 기록한 타율은 .514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밴더빌트 대학에 진학해 학업도 함께 병행하길 바랐지만 드래프트 32번으로 지명한 신시내티 레즈가 제안한 200만 달러의 계약을 거절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2022년 드래프트에서 레즈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트 주니어는 매 오프시즌마다 마차도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고 드디어 2025 스프링캠프 때 빅리그 초청을 받았습니다.

마차도는 “살, 네가 빅리그에 올라오면 내가 큰선물을 줄게”라고 했는데요. 이 선물은 롤렉스(Rolex) 시계였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글의 첫머리에 스튜어트 주니어가 보여준 손목 세리머니는 이 시계를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스프링캠프에서 24타수 7안타를 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 스튜어트 주니어는 시즌을 더블A에서 시작했고 머지않아 트리플A로 승격됐습니다. 테리 프랑코나 신시내티 감독은 “그는 정말 친화도가 높은 타자죠. 빅리그에서 좋은 타자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라면서 스튜어트 주니어에게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트리플A 루이빌 배츠(Louisville Bats)에서 뛴 지 얼마 뒤인 9월, 스튜어트 주니어는 메이저리그로 콜업됐습니다.

그의 빅리그 진입 소식은 스튜어트 주니어 본인보다 마차도와 알론소가 더 먼저 알게 됐습니다. 이들의 인연을 알고 있던 루이빌의 팻 켈리(Pat Kelly) 감독이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죠. 마차도는 이 때 롤렉스 시계와 함께 또 하나의 깜짝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를 축하하는 영상이었죠. 스튜어트 주니어가 보통날처럼 루이빌 야구장에 걸어나가 전광판을 올려다봤을 때 마차도가 미리 찍어둔 축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스튜어트 주니어는 이 영상을 보고 빅리그 진출 소식을 알았죠.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스튜어트 주니어가 샌디에이고 원정 시리즈를 치르기에 앞서 마차도 가족은 그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하는 도중 마차도는 준비해둔 롤렉스 시계 선물을 꺼내 증정식도 가졌답니다. 따뜻한 형님으로 오래도록 곁을 지켜온 마차도가 스튜어트 주니어에게 시계 선물을 하면서 축하 메시지도 남겼죠.

“쇼(Show: 메이저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꼬마야!” (Welcome to the Show,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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