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예의 전당 신인 후보들은 이치로나 CC사바시아급 기록자는 없지만, 각자 한 시절을 풍미한 선수들로 야구사에서 충분히 명예로운 자격을 갖췄습니다. 저번 주 6명에 이어 나머지 6인을 소개합니다. 맷 켐프, 하위 켄드릭, 닉 마카키스, 릭 포셀로, 다니엘 머피, 헌터 펜스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는 지난 18일에 올린 '2026 명예의 전당 신예 후보들' 2부 입니다. 1부에서 말씀드린대로 이번 새 후보들 가운데는 이치로 스즈키나 CC사바시아처럼 야구 역사에 획을 그은 대기록을 남긴 선수는 없습니다. 아마 12명 가운데 단 한명도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 야구선수로서 최고로 명예로운 자리에 갈 수 있다는 자격을 갖췄을만큼 한 시절을 풍미했습니다.
7. 맷 켐프(Matt Kemp)

지금은 다저스 천하죠. 수많은 슈퍼스타가 로스터에 즐비합니다. 하지만 다저스도 암울할 때가 있었는데요. 그 시절 다저스 타선에서 빛난 몇 안되는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켐프의 통산 성적은 타율 .284, 287 홈런, 1031타점, OPS .821입니다.
전성기는 2011시즌이었습니다. 39홈런, 195안타, 126타점을 올렸습니다. 그 해 내셔널리그에서 bWAR 8.0으로 1위였고요. 도루도 40개나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켐프가 다저스에 남긴 유산(legacy)은 여전합니다. 2018년 12월 그가 신시내티 레즈로 향하면서 다저스가 대가로 받은 선수 중 한명이 지터 다운스(jeter Downs)입니다. 2019년 다저스는 다운스가 포함된 패키지로 무키 베츠(Mookie Betts)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에 성공했죠.
8. 하위 켄드릭(Howie Kendrick)

워싱턴 내셔널스에 이 선수가 없었다면 팀의 유일한 우승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켄드릭은 커리어 막판에 내셔널스에 ‘파트타임’ 식으로 영입됐지만 그 해(2019) 내셔널스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최종전(5차전) 연장 10회초 켄드릭이 만루홈런을 쳐냈고 팀은 가까스로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기 때문이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켄드릭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치른 챔피언십시리즈에선 MVP가 됐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한 월드시리즈 7차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그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7회초, 내셔널스가 1점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애스트로스는 필승조 윌 해리스를 마운드에 올렸는데요. 켄드릭이 해리스의 속구를 받아쳐 2점 홈런을 쳐냈죠. 파울 폴대를 스치듯 밀어내면서 넘어간 믿을 수 없는 홈런이었습니다. 공에는 폴대의 노란색 페인트가 그대로 묻어있었죠. 이 공은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는데 과연 켄드릭은 그 곳에 머물 수 있게 될까요.
9. 닉 마카키스(Nick Markakis)

“완벽하게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아주 지루할 정도로 안정적인 선수.” 마카키스가 애틀랜타에서 뛰던 시절 감독이었던 브라이언 스니트커(Brian Snitker)가 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카키스는 이 말처럼 화려하지 않았고, 아주 눈에 띄지 않았지만 팀이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엔 항상 중계 캐스터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게 만들었습니다. 인상적인 시기는 2018시즌이었습니다. 그 해 올스타에도 선정됐죠. 마카키스는 특히 몸관리에 있어서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커리어 내내 부상 이슈로 팀을 어렵게 한 적이 별로 없었고, 허무하게 삼진을 당하면서 물러나는 일도 적었습니다.
2010년대(2010~2019)에만 1651개의 안타를 쳤는데 이 기간 안타생산개수 2위에 오른 선수입니다. 1위는 로빈슨 카노인데요. 약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치면 사실상 1위는 마카키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죠. 마카키스는 특히 삼진을 극도로 혐오했는데요. 한번은 삼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진을 당해도 상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미쳐버릴 거 같아요. 시즌에 150개, 200개 삼진을 당한다는 건(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지 못하는건) 150~200번이나 타석에서 본인과 팀에게 아예 기회를 주지 않은 것과 같은 것 입니다.”
10. 릭 포셀로(Rick Prcello)

제 개인적인 의견에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제가 실제로 본 사이영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덜 압도적인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는 어디서든 소속된 팀에서 꼭 필요한 투수였습니다. 일단 언제든 꾸준한 출장과 엄청난 이닝을 잡아줬습니다. 2009년 20세 나이로 빅리그에 데뷔한 포셀로는 타이거스 유니폼을 입고 31경기 선발투수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후 10년 간, 매 시즌 27~33경기를 꾸준히 소화해줬고 평균자책점 1위에도 올랐고 사이영상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철인’이었죠.
포셀로는 대체로 2~4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중간급 역할을 맡았습니다. 커리어 통산 방어율은 4.40 150승을 거뒀죠. 리그 역사상 방어율 4.40 이상을 기록했음에도 15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단 3명 뿐이었습니다(팀 웨이크필드, 리반 에르난데스, 윌리스 허들린). 점수를 많이 내줘도 승리는 챙겨오는 참 특별한 투수였던거죠.
11. 다니엘 머피(Daniel Murphy)

메이저리그를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 ‘더쇼’를 할 때마다 트레이드로 머피를 데려오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괜찮은 좌타자에 2루수였습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도 만들어준 선수죠. 2015시즌 뉴욕 메츠 소속으로 포스트시즌에 나선 머피는 6경기 연속으로 매일 홈런을 쳐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요. 그가 홈런을 친 투수들 이름을 열거해보겠습니다.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존 레스터, 제이크 아리에타, 카일 헨드릭스, 페르난도 로드니. 이들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거나 헌액될 자격을 갖춘 선수들입니다. 그 때의 머피는 비디오 게임에서도 재현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런 활약에 힘을 받은 메츠는 15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연속 홈런의 마법은 월드시리즈에선 더 이상 통하지 않았죠. 머피의 시즌 전성기는 이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꽃을 피었습니다.
12. 헌터 펜스(Hunter Pence)

2010년대 짝수해의 왕조를 구축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핵심멤버였습니다. 4번의 올스타,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커리어는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기억이 아니죠. 그리고 그는 진짜 괴짜였습니다. 각목을 휘두를 것만 같은 포즈의 타격 폼부터 그랬죠. 하지만 팬들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괴짜였습니다. 그는 타석에서 늘 눈을 부릅떴는데, 뭔가 냄새 날 것만 같은 헝클어진 수염과 그 표정이 어우러져 마치 서부의 무법자 같은 인상을 줬습니다. 종아리는 늘 뭔가에 긁혀 상처가 나 있었고, 유니폼 바지도 반바지처럼 끌어올려 입곤 했습니다. 또 출근길에 그가 타고온 ‘탈것’은 그 흔한 슈퍼카가 아니었고 ‘스쿠터’였습니다.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소개해 드리자면 2012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입니다. 타석에서 공을 잘 맞춰내는가 했는데 야구 방망이가 여러조각으로 부러져 필드에 나뒹굴었습니다. 그런데 공이 이 부러진 배트에 세번이나 맞으면서 회전이 이상하게 걸렸고 수비수들이 처리하지 못하면서 우왕좌왕 할 때 주자들이 홈으로 다 들어왔습니다. 그의 특별한 개성만큼이나 기묘한 순간이었죠.
은퇴 후에는 아내와 함께 카페 겸 게임 라운지를 운영하고 환경보호활동을 하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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