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 98분, 골키퍼가 바꾼 순위표
본문 바로가기

[UCL] 98분, 골키퍼가 바꾼 순위표

by 더콘텐토리 2026. 1. 29.
반응형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League Phase) 마지막 라운드. 추가시간으로 접어든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는 겉으로 보기엔 이미 결론이 난 듯 보였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두 명이 퇴장당한 상태였고, 벤피카는 3대2로 앞서 있었습니다. 수적 우위에, 리드까지 잡고 있으니 벤피카가 이기는 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스코어가 아니라 순위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에서는 24위까지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25위부터는 탈락입니다. 벤피카는 이기고 있었지만 다른 경기 결과들이 겹치며 25위에 머물러 있었고,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레알 마드리드에 승리하고도 대회에서 탈락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벤피카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골, 추가 득점 하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벤피카는 그 사실을 경기 막판까지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골키퍼 아나톨리 트루빈(Anatoliy Trubin)은 프리킥 상황에서 시간을 끌고 있었고, 벤치 역시 한동안은 승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기들이 모두 종료되고 순위표가 정리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고, 벤치에서는 다급하게 팔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끌라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다급히 상대팀 골문을 향해 볼을 전진시키라는 신호였습니다. 시간을 끌며 승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공격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절박한 선택,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다

벤피카 골키퍼 아나톨리 트루빈이 98분, 팀의 챔피언스리그 탈락을 막는 헤딩골을 기록하고 있다.
벤피카 골키퍼 아나톨리 트루빈이 98분, 팀의 챔피언스리그 탈락을 막는 헤딩골을 기록하고 있다.

벤피카 골키퍼 트루빈은 황급히 공을 상대 진영으로 길게 찼고, 레알 마드리드 진영 오른쪽 측면, 거의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프리킥을 얻어냈습니다. 시계는 98분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벤치에서 팔을 흔들었습니다. 전형적인 마지막 선택이 내려졌습니다. 골키퍼 마저 공격진영에 올리는 헤일 메리(Hail Mary), 절박한 선택이지만 또한 성공 확률이 희박한 선택이었습니다. 마침내 프레드릭 아우르스네스(Fredrik Aursnes)가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그 순간 경기장은 이상하리만큼 느려진 듯 보였습니다. 괜찮은 볼이었고, 솔직히 말해 아주 좋은 크로스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이 좋아도, 혹은 희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축구입니다.

 

트루빈이 점프했습니다. 타이밍은 완벽해 보이지 않았고, 몸은 다소 앞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골키퍼니까요. 그런데 공이 그의 이마를 스치듯 맞고 튀어 올라 골문 쪽으로 향했습니다. '어, 들어가나?' 동시에 믿기 어려운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축구는 화려하고 놀라운 스포츠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서사가 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순간은 흔치 않습니다. 경기 후 조제 무리뉴 감독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큰 친구가 올라가서 멋진 골을 넣었더군요"

 

골 하나가 살린 시즌

나에게 오라! 트루빈이 마지막 골을 터뜨리자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에게 오라! 트루빈이 마지막 골을 터뜨리자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 순간, 경기장 한 구역은 사람과 팔, 감정이 뒤엉킨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트루빈은 골키퍼들이 골을 넣었을 때 늘 그렇듯 어정쩡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고, 놀람과 혼란이 동시에 묻어 있었습니다. 그야 그런 경험이 없었을 테니까요. 20미터쯤 달렸을까요. 그는 곧 동료들 속으로 사라졌고, 벤치에서 뛰어나온 선수들이 그를 덮쳤습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Thibaut Courtois)도 트루빈을 찾아와 껴안았습니다. 상대팀 골키퍼였지만 이 순간의 장엄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골은 단순한 추가골이 아니었습니다. 득점과 동시에 순위가 뒤집혔고, 벤피카는 득실차를 끌어올리며 마르세유를 밀어내고 24위로 올라섰습니다. 심판은 경기 재개 없이 경기를 종료했고, 벤피카의 챔피언스리그 시즌은 극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벤피카는 이날 경기 첫 70분 동안 분명히 더 나은 팀이었고, 전반에 4대1로 앞섰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을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20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며 레알 마드리드의 거센 압박을 받았습니다. 무리뉴는 그럼에도 벤치를 쉽게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믿을 만한 카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벤피카에게, 아름다웠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는 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트루빈의 극적인 등장으로 이야기는 동화처럼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골은 벤피카의 시즌을 구했습니다. 몇 주 전 그들은 두 개의 컵 대회에서 모두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선두 포르투에 10점 뒤진 3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200명의 울트라스가 훈련장에 찾아와 구단 회장 루이 코스타에게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클럽이었지만, 적어도 이 밤만큼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경기 후 무리뉴는 역시 무리뉴다운 말을 남겼습니다.

벤피카 조제 무리뉴 감독

"벤피카는 또 질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우리를 공격하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존중입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 존중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반응형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