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이끄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강했다. ‘강했다’란 표현 그대로 과거형이다.
2016~2018시즌 내리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 1위에 올랐고, 2016시즌에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인디언스는 구단 리빌딩을 선언한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그리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같은 지구에 편성된 호혜를 톡톡히 누렸다(3시즌 리그 내 타이거스 상대 최다승 팀 : 인디언스). 하지만 작년에는 메이저리그의 홈런 역사를 새로 쓴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중부지구 패자를 내어줬고, 올 시즌 1위 탈환 역시 다소 버거워 보이는게 사실. 어쨌든 인디언스를 강팀으로 만든 프랑코나 감독 전술의 핵심 중 하나는 ‘강한 불펜 야구’였다.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도 숱하게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낸 앤드루 밀러-코디 앨런의 필승조와 좌완 스페셜 리스트 올리버 페레즈, 우완 사이드암 아담 침버, 강속구를 앞세워 다소 긴 이닝도 소화가능한 닉 위트그렌 등. 답답한 인디언스 타선과 맞물려 인디언스의 짠물 피칭은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들 지경이었다. 점수는 찔끔내고 눈물겹게 그 점수를 지켜야 했으니까.
앤드루 밀러와 코디 앨런을 그야말로 갈아먹다 시피 활용한 덕(?)에 그 둘은 결국 나가 떨어졌다. 코디 앨런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잘 모를지경이다. 밀러는 알다시피 세인트루이스(St.Louis)에서 그저 그런 불펜 투수로 전락했다. 인디언스 프론트는 갈려버린 불펜을 보강하기 위해 2018시즌 도중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언터처블(untouchable) 좌완 불페너 브래드 핸드를 전격 영입했다. 탄탄한 불펜 왕조를 상징하는 인디언스의 마지막 전사라 해야 할까.
*샌디에이고-인디언스 시절 브래드 핸드 성적
2017(샌디에이고 소속) 3승 4패 방어율 2.16 72경기 등판 79.1이닝 WHIP 0.93
2018(샌디에이고, 클리블랜드) 2승 5패 방어율 2.75 69경기 등판 72이닝 WHIP 1.11
핸드는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은 뒤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뒷문을 굳게 지켜줬다. 핸드는 양키스의 클로저 애롤디스 채프먼(Aroldis Chapman)과 극점에 서 있는 유형.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좌우 코너워크를 멋드러지게 활용해 상대 타자들로 하여금 선 채로 삼진을 당하게 만든다. 독특한 투구폼과 매커니즘 그리고 유니크한 팔 스윙 동작은 공을 던지는게 아니라 흡사 ‘뿌린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우리나라 한화 이글스의 정우람과 비슷한 성향의 투수다.
그런 핸드가 고장나기 시작한건 작년 시즌부터. 이닝 소화는 줄었고, 출루허용은 늘었다. 자연스레 방어율도 치솟았는데 문제는 한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핸드가 던져야 할 공의 개수 또한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광속이 아니었던 그의 직구 구속(전성기 평균 94~96마일)은 92마일 밑으로 떨어졌고, 귀신 같은 커맨드도 점점 실종됐기 때문이다.
*브래드 핸드 2019 시즌 성적
2019 6승 4패 방어율 3.30 60경기 등판 57.1이닝 WHIP 1.24
서서히 고장난 신호를 보이던 핸드는 올해 드디어(?) 망가졌다. 이제 그를 9회에 올리는 프랑코나 감독의 결단이 고집으로 느껴질 정도다.
2020 0승 1패 방어율 7.71 6경기 등판 4.2이닝 WHIP 1.50
인디언스는 10일(한국시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가진 원정경기에서 연장 접전승부를 펼쳤다. 승부치기 연장 10회초 딜라이노 드쉴즈가 메이저리그에선 보기 드문 스퀴즈 번트로 귀중한 결승점을 뽑았고 2점의 쿠션을 안고 10회말로 향했다. 이제 경기를 마무리 지어야 타이밍. 브래드 핸드가 마운드에 올랐다. 핸드는 첫 타자를 포스아웃 처리했지만 후속타자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1점을 허용했다. 그리고 뒤이어 스트레이트 볼넷.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도 형성되지 못한 4개의 공을 던진 이후 다음 타자에게 또 볼을 던졌다. 볼맨(Ball Man). 올 시즌은 등판하는 내내 이랫으니 핸드의 이런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았는데, 하늘이 인디언스를 도왔다. 경기 내내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아니 퍼부어댔다. 타자와의 승부가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심판진이 경기를 중단시킬 정도의 비였다. 50여분 중단 이후 속개된 경기에서 핸드의 모습은 다행히(?) 볼 수 없었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올리버 페레즈는 깔끔하게 두 타자를 돌려세우고 인디언스의 승리를 지켜줬다.
과거의 핸드를 기억하는 팬들은 이제 그 시간과 작별할 때다. 프랑코나 감독은 승부처에서 핸드를 얼마나 더 기용해야 고집을 내려놓을까. 보는 팬들은 이렇게 초조한데 말이다. 이제 핸드도 갈아먹은 인디언스식 불펜야구. 누구를 영입해야 채워넣어야 하나. 이번 시즌 보아하니 좋은 매물은 마이애미 말린스에 많던데. 그렇다 ! 핸드도 말린스에서 지명 할당돼 샌디에이고가 데려갔었지. 핸드도 마이애미산 불페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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