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대 스포츠 구단 가운데 슬픈 역사를 가진 팀은 많다. 메이저리그 구단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는 지난 1977년 창단했다. 이 팀은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월드시리즈 진출 경험도 없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본 적도 없다. 게다가 지난 2001년 이후에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른 적이 단 한 경기도 없다. NBA 미네소타 팀버울브스(Minnesota Timberwolves) 가 작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이제 매리너스는 미국 4대 스포츠 구단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 됐다.
NBA리그에서도 매리너스처럼 슬픈 역사를 가진 구단이 있다. 바로 LA클리퍼스(Los Angeles Clippers)다.
1. 암울했던 클리퍼스의 과거
1970년 창단한 클리퍼스는 리그 파이널 경험도 없으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른 적도 없다. 당연히 리그 우승은 그들과는 상관없는 단어였다. 또한 창단 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 단 한번도 50승 이상을 기록해보지 못했다. 또한 이 팀에는 영구 결번된 선수도 없다. 이정도면 팬들의 인내심도 대단하다.
클리퍼스가 이렇게 비참한 시즌을 이어온 이유는 뭘까? 많은 이는 전 구단주인 ‘도널드 스털링(Donald Sterling)’의 구단 운영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1981년부터 33시즌 동안 팀을 소유했던 스털링의 운영 방침은 이기적이었고 졸렬했다. 캘리포니아 지역 부동산 재벌인 스털링은 1984년 구단 연고지를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전시켰다. 이 도시는 NBA 최고의 명문구단 LA레이커스(LA Lakers)의 연고지다. 스털링은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클리퍼스의 새 구장 건축 계획은 애초에 세우지도 않은 채,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했다.
한편, 리그에는 샐러리 캡 이하로 팀 전체 연봉을 지불하는 팀은 타 구단이 스타 선수들에게 초고액 연봉을 지급함에 따라 내게 되는 사치세의 일부를 보조금처럼 받는 규정이 있다. 스털링은 이 규정을 악용해 본인의 이익을 위해 매해 팀 샐러리를 낮췄다. 이 밖에도 스포츠 구단주로서 보인 졸렬한 행위는 많으나 팬들의 정신 건강 상 여기 멈추겠다.
이런 클리퍼스에게 서광이 비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2014년 4월 스털링이 사석에서 발언했던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고 아담 실버 NBA총재는 리그 규정 중 최대 수위의 징계를 내린다. 그는 NBA에서 모든 활동을 금지 당했고 25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나아가 전체 구단주의 70%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구단 강제 매각이 가능하다는 리그 규정에 의해 스털링은 더 이상 구단주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2. 클리퍼스의 도약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빌 게이츠’ 보다 더 사랑한 사람. 2000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로 재직하며 윈도우시스템, 파워포인트, 엑셀 프로그램 등을 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 낸 사람인 스티븐 발머(Steven Ballmer), 그가 클리퍼스의 새 주인이 됐다.
2014년 5월 30일부로 발머는 스털링의 클리퍼스를 20억 달러라는 NBA 역대 최대 규모의 금액으로 인수했다. 인기 없고 슬픈 역사를 간직한 팀을 인수하는데 별다른 협상도 하지 않고 통 크게 지갑을 연 발머는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클리퍼스를 레이커스에 버금가는 명문으로 키우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발머 구단주는 취임 이후 팀을 대폭 물갈이 하지 않고 기존의 감독과 프론트를 위로하며 신임했다. 그는 기업 경영을 통해 습득한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을 스포츠 구단에서도 그대로 활용했다. 발머 체제 이후 닥 리버스 감독과 클리퍼스 프론트는 ‘언더독’ 이미지는 유지하면서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왔다. 또한 한계가 보이는 크리스 폴(Chris Paul)과 블레이크 그리핀(Blake Austin Griffin) 중심의 팀 구성을 과감하게 개편했다. 폴과 그리핀이라는 스타선수들을 떠나보내면서도 팀에 필요한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영입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 샐러리캡으로 지난 오프시즌 슈퍼스타 카와이 레너드(Kawhi Leonard)와 폴 조지(Paul George)를 영입하면서 클리퍼스는 단번에 우승후보가 됐다. 레너드와 조지 영입을 위해 리버스 감독은 발머 구단주에게 “이 시점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들어온다면 우승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건의했고 발머 감독은 이 말에 응답했다. 리버스의 판단대로 클리퍼스는 2019-20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가운데 한 팀으로 부상했다.
발머 구단주는 클리퍼스 팬들에게 셋방살이의 서러움도 덜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팬들에게 2017년 LA 잉글우드 지역에 새로운 경기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에 1만 8000여석 규모의 경기장을 개인 돈으로 건축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비록 지금 경기장 신축과 관련한 MSG포럼과의 법적 분쟁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고 있지만 그는 클리퍼스를 명문구단으로 만들겠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클리퍼스의 팬들은 서럽지 않다. 이 팀의 위대한 식스맨 ‘루 윌리엄스(Lou Williams)’의 멘트를 클리퍼스의 팬들이 당당하게 외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This is My Time. This is My House
3. 2020년 새로운 구단 역사를 쓸 것인가
시즌 전 전망과는 다르게 클리퍼스는 16승 7패로 서부 4위를 달리고 있다. 기대보다 압도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클리퍼스를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고 있다. 그들이 ‘20승 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는 LA레이커스, 밀워키 벅스와 함께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를 짚어보자.
(1) 강력한 에이스 듀오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영입
클리퍼스를 강력한 우승후보를 뽑는 첫 번째는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인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의 만남이다.
카와이 레너드는 지난 시즌 토론토 랩터스를 이끌고 리그 최강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파이널 3연승 저지한 슈퍼스타다. 그는 지난 포스트 시즌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캐나다에 사상 최초의 NBA 파이널 트로피를 안겨줬다.
폴 조지는 작년 시즌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뛰며 리그 MVP급 성적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초반 어깨부상으로 결장했지만, 그가 보여주는 성적은 작년 그 이상이다. 조지가 경기당 36분만을 뛴다고 보정해 만든 기록수치를 보면 득점은 27.4에서 28.8로 늘었고 3점슛 성공률도 38.6%에서 42.3%로 늘었다. 그는 올 시즌 약 1분에 1개씩 3점슛을 넣고 있다. 조지 보다 많은 3점슛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제임스 하든뿐이다.
비록 7일(한국시간) 밀워키 벅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가 함께 뛴 경기에서 클리퍼스는 6승 2패를 기록하고 있다. 팀이 23경기를 치르는 동안 레너드는 6경기를 결장했고, 폴 조지는 11경기를 뛰지 못했다. 아직 이 두 슈퍼스타가 호흡을 맞춘 경기는 8경기 밖에 되지 않는다.
닥 리버스 감독은 워싱턴 위저즈와의 경기가 끝나고 “레너드와 조지의 2:2 플레이는 아직 진화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선수를 활용한 3:2 플레이도 아직 다 만들어 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팀의 장점은 ‘지금 현재’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보여줄’ 모습에 있다”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클리퍼스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조직력 있는 팀으로 거듭날 것이다.
(2) 수비! 클리퍼스 잠재력의 중심
클리퍼스는 11월 한 달 가장 강력한 수비의 힘을 보여준 팀 중 하나다. 10월 31일 이후 클리퍼스가 보여준 수비 지표는 리그 3위 수준에 해당한다. “우리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공격력 그 이상의 수비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하는 리버스 감독은 클리퍼스 승리의 원동력으로 공격 보다 ‘수비’를 꼽는다. 지난 몇 주간 클리퍼스를 상대한 팀의 에이스들의 슈팅 기록을 봐도 이 팀의 수비가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11/18 애틀란타 호크스: 트레이 영 4/16(25.0%)
* 11/21 보스턴 셀틱스: 켐바 워커 4/17(23.5%)
* 11/27 댈러스 매버릭스: 루카 돈치치 4/14(28.6%)
* 12/04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데미언 릴라드 5/15(33.3%)
클리퍼스는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패트릭 베벌리, 모 하클리스 등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비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팀에는 많은 수비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비수들이 상대선수를 어떻게 막는지 알고, 또 수비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건 일반 수준하고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라는 폴 조지의 말에서 이 팀이 얼마나 수비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다.
(3) 리그 최고 수준의 클러치 경쟁력
클리퍼스는 지금까지 총 11번의 클러치 경기(4쿼터 5분 이내, 5점 이내 경기)를 치렀다. 그 중 8번의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레이커스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승률이다. 이 기록은 레너드와 폴 조지가 동반 출전한 경기가 없는 11경기에서 만들어진 기록이다. 두 선수가 동시에 코트 위 있을 때 이 팀의 클러치 경쟁력은 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클리퍼스는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듀오를 보유하고 있고 수비에 대한 자신감도 강하다. 또한 지난 시즌 식스맨상을 받은 탑스코어러 루 윌리엄스도 있다. 이 팀을 만나 클러치 상황에 놓인 상대팀의 감독은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 클리퍼스는 과거의 설움을 잊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다른 명문구단들과 함께 우승 레이스를 다툴 팀으로 거듭난 것이다. 2020년 클리퍼스와 발머 구단주는 팬들에게 첫 컨퍼런스 파이널, 리그 파이널 나아가 우승이라는 감격을 선물할 수 있을까?
'NBA > LA Clipp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카 돈치치, 승리의 '메시아'가 되다. (0) | 2020.08.25 |
---|---|
[NBA 재개] 파이널4 전망 (2)-LA클리퍼스 (0) | 2020.07.14 |
새로운 스토리 만들어 가는 NBA 신흥 라이벌 클리퍼스와 로케츠 (0) | 2020.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