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협상의 신' 다니엘 레비(Daniel Levy), 협상의 '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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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협상의 신' 다니엘 레비(Daniel Levy), 협상의 '짐'이 되다

by 더콘텐토리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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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레비 회장

해외축구 팬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리 없죠.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바로 토트넘 핫스퍼의 회장 다니엘 레비(Daniel Levy)입니다. 레비 회장은 오랫동안 '협상의 신'으로 불려왔습니다. 물론 좋은 의미만은 아니었습니다. 잔혹할 정도로 집요하게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협상 전략, 상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뒤 선수를 낮은 가격에 데려오는 데 도가 튼 인물이었죠. 실제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베르바토프 이적 협상을 두고 “엉덩이 수술보다 고통스러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협상 스타일이 도마 위에 오르며, 오히려 팀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레비 회장은 주요 이적 협상에서 상대 구단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이적료를 내리기 위해 이적시장 마지막 순간까지 거래를 미루며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입니다. 처분해야 하는 선수가 있는데 이적 마감에 쫓기는 구단이나, 재정 압박을 받는 구단들이 그의 먹잇감이죠. 이처럼 그는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구단의 이익을 끝까지 지켜내는 대표적인 ‘강경파 협상가’로 꼽혀왔습니다. 업계에서는 “레비가 찍으면 결국 데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올여름은 그에게 악몽 같은 시간으로 기록될 듯합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크리스탈 팰리스 에베레치 에제(Eberechi Eze)에게는 6800만 파운드(약 1280억 원)의 바이아웃 조항이 있었습니다. '있었다'는 말은 지난주 만료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바이아웃'이 생소한 독자를 위해 설명드리자면, 선수와 구단 간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도 타 구단이 제시하면 조건 없이 선수를 데려갈 수 있도록 설정한 이적료 최소 금액입니다. 보통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가 계약을 맺거나 재계약을 맺을 때, 빅클럽 이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약에 넣는 조항입니다.

에베레치 에제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과 크리스탈 팰리스는 에제 이적에 원칙적으로 합의했고, 선수와의 협의도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었습니다. 에제는 평소 손흥민과도 친분이 두터워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상 토트넘 선수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협상은 레비 회장에게 유리해 보였습니다. 바이아웃 만료 전까지 다른 구단의 움직임이 없고, 선수도 토트넘에 우호적이었으니까요. 레비 회장은 특유의 지연 전략으로 시간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이아웃 금액보다 낮은 6000만 파운드(약 1130억 원)를 크리스탈 팰리스에 제시합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하죠. 아스널의 카이 하베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개막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아스널은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바이아웃 조항이 만료됐음에도 에제의 바이아웃 금액에 근접한 금액으로 크리스탈 팰리스를 설득했고 합의에 이르죠. 이제 남은 건 선수 개인과의 협상. 그런데 여기서 토트넘이 간과한 부분이 따로 있었습니다. 에제는 원래 아스널 유스 출신입니다. 평소에도 “아스널은 꿈의 클럽”이라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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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치 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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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고, 파브리치오 로마노는 자신의 X(구 트위터)에 계약 성사를 알리는 'Here we go'를 띄웁니다. 토트넘이 세부 조건을 따지며 시간을 끄는 사이 최대 라이벌이 거래를 가로챈 겁니다.

결과적으로 아스널이 합의한 금액과 토트넘이 제시한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당연히 “푼돈 아끼려다 더 큰 손해를 봤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토트넘이 또다시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졌다”며 레비의 지나친 가격 집착을 꼬집었습니다.

 

'또다시'라는 언론의 비판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닙니다. 올여름 레비 회장이 겪은 망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모건 깁스-화이트(Morgan Gibbs-White) 영입도 그의 욕심으로 어그러졌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은 노팅엄이 깁스-화이트에게 설정한 6000만 파운드(약 1130억 원)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했고, 영입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깁스-화이트의 바이아웃 금액은 맨시티나 리버풀과 같은 빅클럽과 비(非)빅클럽 간 차이가 있었는데, 토트넘이 구단과 선수간의 상세한 계약 내용을 어떻게 알고 정확한 금액을 지불했냐는 겁니다. 노팅엄은 즉각 탬퍼링(사전 접촉) 의혹을 제기하며 EPL 사무국에 조사를 의뢰했고, 소송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동시에 에반젤로스 마리나키스 노팅엄 구단주는 선수에 대한 회유와 설득에 나섰습니다. 결국 깁스-화이트는 노팅엄 포레스트 잔류를 선택하고 토트넘 행을 포기하죠.

 

관련 기사 : 이적 없었던 이적, 모건 깁스-화이트 이적 소동이 노팅엄에 남긴 것

모건 깁스-화이트와(왼쪽) 마리나키스 구단주

만약 레비 회장이 비(非)빅클럽 대상 바이아웃 금액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을 노팅엄에 제시했다면 큰 잡음 없이 데려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식의 협상 방식이 일을 그르치게 만든 셈입니다.

 

토트넘은 손흥민 이적과 제임스 매디슨, 데얀 클루셉스키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보강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모건 깁스-화이트와 에제 영입 모두에 실패하며, 매우 어려운 시즌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레비 회장이 지금까지 보여온 ‘지연과 압박’ 중심의 협상 방식이 오히려 신뢰를 잃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난 토트넘 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이제 레비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협상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구단 내 의사결정 구조를 보다 유연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토트넘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협상의 신’이라는 별칭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는 지금, 레비 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축구 팬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에제 영입 실패로 궁지에 몰린 토트넘은 맨체스터 시티의 사비뉴를 8,000만 유로(약 1,300억 원)에 데려오려 한다고 합니다. 패닉 바이, 흔히 말하는 ‘소탐대실’이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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