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랜도 노리스(Lando Norris)가 처음 맥라렌의 보스에게 소개됐을 때, 분위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맥라렌을 1981년부터 이끌며 황금기를 만든 론 데니스(Ron Dennis)는 젊은 노리스를 보고 잠재력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체구가 작고, F1 최고 무대에서 버틸 체력과 근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최근 자서전에서 맥라렌 레이싱 CEO 잭 브라운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론은 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25년 아부다비에서, 노리스는 그 의심을 완벽하게 뒤집었습니다.
드라이버챔피언 확정에 필요했던 포디움(3위 이내)으로 피니시하며 마침내 F1 월드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는 2008년 루이스 해밀턴 이후 맥라렌이 배출한 첫 챔피언이며, 만 26세의 나이로 F1 역사상 7번째로 어린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니키 라우다, 짐 클락, 키미 라이코넨보다도 젊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F1 역사 속에 확실히 새겨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노리스는 이미 월드 챔피언 이전부터 스타였습니다. 2019년 19세로 데뷔한 이후 넷플릭스 〈F1 본능의 질주〉를 통해 글로벌 팬층을 확보했고, 보그, GQ, 배니티 페어 등 패션 매거진 표지까지 장식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타이틀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그는 첫 우승조차 없었고, 랜도 노리스가 아닌 “Lando No Wins(랜드 노 우승)”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노리스는 2010년대 초반 카트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래 스타로 불렸고, 2014년 국제 카트위원회 FIA KF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최연소 기록으로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를 ‘넥스트 해밀턴’이라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모토 GP 발렌티노 로시(Valentino Rossi)의 팬이었고, 헬멧의 형광색 디자인도 그의 영향입니다. 형 올리버를 따라 카트 레이싱으로 발을 들였고, 그것이 인생의 결정적 방향이 되었습니다.

노리스의 성장은 해밀턴과 방식이 달랐습니다. 해밀턴의 아버지는 여러 일을 병행하며 아들의 레이싱 비용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반면 노리스의 아버지 아담은 3천억 원대 자산을 가진 기업가로, 최고의 장비와 훈련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F1에선 돈만으로는 절대 정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노리스는 성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습니다.
2015년 영국 F4 챔피언, 2016년 유럽 포뮬러 르노 더블 챔피언, 뉴질랜드 윈터 시리즈 우승까지 차례로 정복하며 그는 톱 레벨 드라이버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맥라렌 아카데미에 합류한 뒤 헝가리 테스트에서 페라리의 세바스티안 베텔 바로 뒤,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을 내며 팀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데뷔, 성장, 시련, 그리고 챔피언.

노리스는 이제 ‘미래의 스타’가 아니라 ‘현재의 챔피언’입니다.
그리고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
그는 맥라렌과 함께 버텼고, 결국 맥라렌과 함께 정상에 올랐습니다.
2025.12.05 - 드라이버 우승 문턱 맥라렌(McLaren)팀이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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