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후반, NBA리그를 상징한 팀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다. 워리어스는 2014~19시즌 구간에서 5년 연속 리그 파이널에 진출하며 리그를 완벽히 장악했다.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그리고 케빈 듀란트를 보유한 워리어스는 빠른 템포의 경기 운용과 효율적인 득점력으로 상대팀들을 압도했다.
워리어스가 군림하는 동안 서부컨퍼런스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에 나선 팀은 휴스턴 로케츠(Houston Rockets)다. 로케츠가 ‘타도 워리어스’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워리어스 경기 시스템과 반대로 ‘다운 템포 운영’이었다. 마이크 댄토니(Michael Andrew D'Antoni) 감독은 로케츠의 경기를 48분 내내 일정한 속도로 유지시켰고, 이를 통한 체계적인 포지션 포메이션을 설계했다. 댄토니 감독의 경기 운영 시스템 설계가 가능했던 이유는 로케츠가 농구도사 제임스 하든(James Harden)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 핸들링과 돌파 스킬 그리고 상대 수비를 붕괴시키는 3점슛을 장착한 하든은 리그 최고의 스코어 생산력을 기반으로 팀의 중심이 됐다.
2017-18시즌 로케츠의 대럴 모리(Daryl Morey) 단장은 하든의 볼 핸들링-스코어링 부담을 덜어주고 댄토니 감독의 팀 설계에 방점을 찍어줄 선수로 슈퍼스타 포인트 가드 크리스 폴(Chris Paul)을 영입했다. 이 영입으로 수많은 팬들은 로케츠가 워리어스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로케츠는 끝내 워리어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로케츠의 최근 5시즌 대 워리어스 전적(플레이오프)
2014-15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1승 4패
2015-16시즌: 컨퍼런스 1라운드 1승 4패
2017-18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3승 4패
2018-19시즌: 컨퍼런스 2라운드 2승 4패
그리고 로케츠가 그토록 타도하고 싶었던 워리어스는 2019 파이널에서 토론토 랩터스(Toronto Raptors)에게 우승을 내준 후 절반쯤 해체됐다.
절대 강자가 사라진 2019-20시즌, 모리 단장은 오프시즌에 리그 MVP 포인트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Russell Westbrook)을 트레이드로 영입시키며 또다시 우승을 노리고 있다. 2019-2020 시즌도 어느덧 절반이 흘렀다. 로케츠가 지금까지 펼친 경기 몇 개를 복기하며 그들의 이번 시즌 우승 가능성을 살펴보자.
▣ 밀워키 벅스전(10월 25일)
: 빨라진 트랜지션 속도, 킥 아웃 패스의 봉쇄에 무너진 공격력
로케츠는 개막전에서 우승후보 밀워키 벅스(Milwaukee Bucks)를 만났다. 예상과는 다르게 전반전이 끝났을 때 로케츠는 16점을 앞섰다. 로케츠는 초반부터 ‘다운-템포’ 경기 운영에서 벗어나 빠른 트랜지션을 통해 밀워키의 가드 수비진을 붕괴시켰다. 이런 경기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러셀 웨스트브룩의 빠른 움직임과 돌파력 덕분이다. 웨스트브룩은 빠른 드리블링을 통해 골밑으로 볼을 끌고 갔고, 이 때 2명의 수비가 달라붙자 재빨리 킥 아웃 패스를 통해 PJ터커, 벤 맥클레모어, 그리고 에릭 고든 등에게 오픈 3점 찬스를 제공했다. 느릿느릿 수비들을 몰고 다니며 동료들의 오픈 찬스를 엿보던 크리스 폴의 경기운영과는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후반전에서는 로케츠의 한계가 드러났다. 벅스의 마이크 부덴홀저(Mike Budenholzer) 감독이 택한 수비전술은 철저한 킥아웃 패스 동선 봉쇄였다. 하든-웨스트브룩의 킥 아웃 패스 동선이 막히자 두 선수의 개인 기량에 의존한 득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두 선수의 체력 부담도 늘어났고 슈팅 성공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로케츠는 이날 벅스에게 111 대 117로 패배했다. 개막전에서 로케츠는 그들의 명과 암을 뚜렷하게 노출했는데, 이 장∙단점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워싱턴 위저즈전(10월 31일)
: 클러치 상황에서 빛나는 하든의 자유투 득점 능력
이 날 경기에서 로케츠는 워싱턴 위저즈(Washington Wizards)를 상대로 연장전 없이 159 대 158로 승리했다. 연장경기 없이 158점 이상을 기록한 것은 NBA역사에서 두 번째다. 위저즈는 이 날 야투 성공률 62.6%와 함께 20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성공률 55.6%).
상대팀이 이런 훌륭한 공격지표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케츠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든의 자유투 득점이었다. 하든은 이날 경기 종료 2.4초전 158 대 158의 슈퍼클러치 상황에서 결승 1득점을 자유투로 기록했다. 하든의 올 시즌 가장 큰 무기는 이런 클러치 상황에서의 빛나는 자유투 획득 능력이다. 하든은 올 시즌 개막 첫 4경기에서 모두 12개 이상의 자유투를 던졌는데, 해당 구간 하든보다 많은 자유투를 획득한 선수는 리그 역사상 3명뿐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득점을 자유투로 기록하고 있는지 굳이 수치를 들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시카고 불스전(11월 10일)
: 페인트존 약점을 상쇄시키는 극단적인 스몰라인업
로케츠는 이날 경기에서 23점차 대승을 거뒀다. 이 날 로케츠가 페인트 존에서 올린 득점은 34점에 불과했다. 반면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는 64점을 기록하며 페인트 존에서의 득실마진만 -30점을 기록했다. 이런 페인트 존 득점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끈 원동력은 ‘3점슛&자유투’였다. 로케츠는 이 날 19개의 3점슛과 29개의 자유투를 얻어냈다. 불스는 4개의 3점슛과 함께 4득점만을 자유투로 올렸을 뿐이다.
이런 결과가 가능한 것은 댄토니 감독의 극단적인 스몰라인업 운영 때문이다. 댄토니 감독의 스몰라인업 운영은 팀이 앞서 있는 상황이 아닌 클러치 접전 양상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 날 경기에서도 3~4점차 접전양상에서 웨스트브룩-고든-리버스-하우스주니어-하든을 코트에 세웠다.
스몰란인업이 가동되면 하든이 공격을 시작할 때 3점슛 라인 안에 로케츠 선수는 단 한명도 없다. 4명의 선수 모두 하든의 1대1 공격을 외곽 라인 바깥에서 보고만 있다. 하든이 돌파하는 순간 2명 이상의 상대 수비가 페인트 존으로 밀집하게 되고, 이때 로케츠의 나머지 4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오픈 찬스를 기다렸다가 캐치 앤 슈팅으로 3점 슛을 적립한다.
로케츠가 이날 보여준 페인트 존 득실마진은, 그들이 승리를 위해 약점을 고치기보다는 강점을 더 강화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전(12월 25일)
: 극단적인 스몰라인업의 양면성
5년간 로케츠의 목표 대상이었던 워리어스와의 크리스마스 매치업은 시작하기 전 이미 김이 샜다. 커리, 톰슨의 부상으로 워리어스의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몰락한 워리어스는 이 날 경기 전까지 7승 24패(승률 22.6%)를 기록 중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로케츠의 싱거운 승리를 예측했다.
예상대로 로케츠는 전반을 끝내고 13점차로 여유있게 앞서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3, 4쿼터 동안 36점만을 기록하는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결국 116 대 104로 패했다.
하든을 상대하는 팀들의 정석이 되어버린 더블팀 수비를 하든은 잘 견뎌냈다. 문제는 위에서 로케츠의 장점으로 쓴 ‘스몰라인업’이 고장 났다. 이 날 하든을 제외한 로케츠의 선수들은 총 41개의 3점슛을 던졌는데, 그 중 31개가 림을 비켜갔다. 하든의 조력자 웨스트브룩은 야투 성공률 34.4%와 함께 3점슛 성공률 0%(8개시도)로 팀 패배의 원인이 됐다. 이 날 로케츠가 보여준 경기 운영은 스몰라인업 운영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기다. 외곽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페인트 존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로케츠의 외곽 고집은 연속된 득점 실패로만 이어지고 결국 패배로 마무리된다.
▣ LA레이커스전(1월 19일)
: 뚜렷해지는 페인트존 약점
로케츠는 이 경기에서 LA레이커스(LA Lakers)에게 9점차 역전패를 당했다. 이 날 패배로 로케츠는 시즌 두 번째 3연패를 당했는데, 모두 역전패였다.
로케츠의 백코트 콤비 하든과 웨스트브룩은 69득점을 합작하며 안정적인 경기를 선보였으나 또다시 페인트 존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최근 로케츠는 페인트 존에 클린트 카펠라(Clint Capela) 홀로 서 있는 싱글 포스트 라인업을 운영 중이다. 앤서니 데이비스(Anthony Davis Jr.)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페인트 존에서 52득점을 올리며 42득점을 올린 로케츠를 압도했다.
문제는 로케츠의 강점인 3점슛과 자유투에서도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날 로케츠는 3점슛으로 36득점(성공률 32.4%)을 올렸는데 레이커스 역시 33득점(성공률 33.3%)을 기록했다. 자유투에서도 두 팀은 23득점으로 동일한 지표를 보였다. 로케츠는 시즌이 지날수록 약점은 도드라지고 강점은 둔화되고 있다.
제임스 하든은 경기당 평균 37.1득점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인 야니스 아데토쿰보(Giannis Antetokounmpo)와는 7.1점 차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197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2위 디본테 그레이엄(Devonte’ Graham)과 37개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로케츠는 리그 3점슛 성공회수 1위,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의 필드골 성공률은 45.3%로 리그 21위에 머물러 있다. 득점 1위를 기록하는 팀의 필드골 성공률이 21위라는 것은 이 팀의 득점 효율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케츠는 하든이 전성기 구간에 있을 때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시즌도 ‘윈나우(Win Now)’를 외치며 웨스트브룩을 영입해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불안한 경기력으로는 이번 도전도 힘들어 보인다. 그들은 페인트 존을 강화시키고 필드골 성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쉽게도 모리 단장이 설계해놓은 선수 명단에 이런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해줄 선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제임스 하든과 스몰라인업으로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려 했던 휴스턴 로케츠, 승리할 땐 농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팀이 되겠지만 패배하면 농구의 기본을 망각한 팀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이번 시즌 남은 일정에서 로케츠가 어떻게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그들의 도전은 성공할지 지켜보자.
'NB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 2020 NBA 올스타 (0) | 2020.06.19 |
---|---|
어린 곰돌이들의 반란(The uprising of young Grizzlies) (0) | 2020.06.14 |
주연이 되고 싶은 유타 재즈(Utah Jazz) (0) | 2020.06.13 |
원맨에 의존하지 않는 원팀, 마이애미 히트 (3) | 2020.06.13 |
식서스(76ers)의 약점을 보여준 밤 (0) | 2020.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