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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LA Lakers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며...그의 인간적인 일화들

by 더콘텐토리 2020. 6. 14.

 

지난 1월 27일(한국시간) 불의의 헬리콥터 사고로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는 농구계의 영원한 별이 됐다. 황망함과 슬픔에 잠긴 LA 레이커스(LA Lakers) 구단은 코비 사망 이후 3일 동안 그 어떤 공식적인 메시지도 발표하지 않았다. 코비가 사망한지 5일이 지난 2월 1일(한국시간) 레이커스 구단은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서 열린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Portland Trail Blazers)와의 경기에 앞서 그 어떤 행사보다 슬픈 추모식을 준비했다.

2만 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모든 관중석 좌석에 코비를 기리는 티셔츠를 걸어놓았고, 작전타임과 하프타임 등 경기가 중단될 때마다 지난 20년간 코비와 레이커스가 함께 이루었던 수많은 업적과 추억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ESPN은 이 경기를 전국 중계로 편성하고 ‘Remembering KOBE’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경기는 미국에서만 441만명이 시청해 NBA역사상 시청자 수 2위를 기록했다.

평소 코비와의 ‘Brotherhood(형제애)’로 돈독한 사이임을 알려온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는 담담하게 코트위로 걸어 나와 이번 헬기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차분하게 부른 뒤 코비를 향한 가슴 저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기 위해 미리 준비해온 연설문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준비된 말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겠다.”고 말한 뒤 진심을 다해 그를 기억하는 말을 남겼다.

평소 코비를 존경해온 레이커스의 가드 퀸 쿡(Quinn Cook)은 추모식이 진행되는 내내 오열했다. 상대팀 포틀랜드의 감독과 프론트는 모두 코비의 시그니처 운동화를 신고나와 그를 추모했다. 눈시울이 불거진 테리 스토츠(Terry Stotts) 포틀랜드 감독과 트레버 아리자(Trevor Ariza)의 얼굴 그리고 스테이플스 센터 주변에서 그를 추모하는 LA시민들의 모습은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슬픔에 잠기게 했다.

NBA를 사랑하는 ‘더콘텐토리(The Contentory)’ 구성원 모두 큰 슬픔에 잠겼고, 한동안 코비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제 잠시 슬픔을 뒤로 하고 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키워드로 정리하며 그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의 기록적인 부분은 타 매체에서도 이미 많이 보여줬기에 우리는 그의 인간적인 일화를 전하고 싶다.

A : Achilles’ tendon (코비의 아킬레스건)

코비의 농구 그리고 승리에 대한 집념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한경기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2013년 4월 13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LA레이커스의 경기를 선택하겠다. 2013년 4월 시즌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비는 시즌 마지막 7경기에서 평균 28.9득점을 몰아넣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갔다. 평균 득점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마지막 7경기에서 평균 45.5분(경기시간 48분)을 뛰었다는 것. 스스로 신체의 극한으로 몰고 가면서까지 승리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 그는 결국 13일 경기에서 왼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며 해당 시즌을 마감했다. 그는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고집스럽게 자유투를 던지러 코트로 다시 나왔고, 그 후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C : Clutch (클러치 상황에 겁이 없던 선수)

코비가 수많은 클러치 슛을 성공시킨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NBA TV는 ‘The Lis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NBA역사상 가장 빛나는 클러치 슛을 소개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방송에 출연한 포틀랜드의 가드 데미안 릴라드(Damian Lillard)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클러치 슈터는 단연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코비 브라이언트다”라고 말하자 진행자가 “그 중 단 한명을 꼽으라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릴라드는 “그 질문은 당신은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는가,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받았는가 라는 질문과 같다. 답을 낼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코비는 클러치 상황에서 팀을 수없이 많이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보다 더 존경받을 점은 클러치 상황에서 누구보다 용감했다는 것이다. 1996-97 시즌 레이커스가 유타 재즈와 맞붙은 서부컨퍼런스 2라운드 마지막 5차전에서 코비는 닉 반엑셀(Nick Van Exel)과 함께 분투하며 팀을 연장으로 이끌었으나 연장 마지막 클러치 상황에서 에어볼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당시 코비가 마지막 슛을 던지면 안 된다는 보도와 함께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샤킬 오닐(Shaquille O'neal)은 은퇴 후 저술한 자서전을 통해 “마지막 작전타임 때, 누구도 마지막 슛을 던지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우리 팀은 모두 얼어붙었고, 감독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코비 브라이언트만이 그 상황을 대담하게 받아들였고, 그가 슛을 던진 것이다. 난 그 때 그를 존경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D : Discipline (지독한 훈련벌레)

그가 지독한 훈련벌레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2년 전체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해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던 제이 윌리엄스(Jay Williams)가 2017년 ESPN에 출연해 소개한 코비의 일화를 들어보자. “레이커스 원정 경기에 앞서 오후 3시 경기장을 찾았다(경기는 오후 7시였다). 슛 400개를 던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체육관에 이미 코비가 나와 있었고, 그는 땀에 흠뻑 젖은 채였다. 1시간 반 가량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체육관에 다시 와보니 코비는 여전히 슛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25분가량을 더 머물며 코비를 지켜봤다. 그의 연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코비를 찾아가 물어봤다. 왜 그렇게 운동을 오래 하는 것이냐고. 코비는 ‘네가 체육관에 온 것을 봤다.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너보다 무조건 더 열심히 할 거라는 것을’ 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처럼 높은 수준의 경쟁심을 겪어 본 것이 처음이었다.”

2011년 한국 방문 당시 코비가 가장 먼저 문의한 것은 연습장의 위치와 사용 시간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농구에 미쳐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통 NBA 슈퍼스타들은 방한 할 때 한국의 클럽문화를 궁금해 하며 홍대의 유명 클럽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코비가 에이전시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연습할 수 있는 코트 섭외였다.

F : Family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한 가장)

코비는 농구밖에 모르는 선수였고 인터뷰를 통해서도 “농구를 잘할 수 있다면 그 외의 것은 모두 필요 없다. 인간관계도 부질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종종 남겼다. 그런 그가 딸들이 태어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딸들의 유치원 발표회나 학교에서의 기념회가 있는 날이면 코비는 경기 직후 항상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헬기를 타고 딸의 유치원과 학교로 향한 것은 선수들 사이에선 유명했다. 딸들이 태어난 후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출근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딸들에게 강인하고 반듯한 아버지로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의 사후 LA의 대주교 조스 고메스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그가 은퇴 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부인과 함께 설립한 재단을 비롯해 여러 자선기관을 통해 선행을 이어간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더 먹먹하게 만들었다.

G : Gentleman (언제나 신사였던 남자)

“농구는 흑인들이 많이 뛰는 스포츠다. 우리는 코트에서 존경받아야 한다. 그리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코트를 존경해야 한다” 코비는 이렇게 말하며 코트에 출근할 때면 항상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고수했다.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할 때는 발음을 또박또박하기 위해 발음교정까지 받았다.

한국의 한 농구매거진 편집장이 소개하는 그와의 인터뷰 일화는 그가 얼마나 매너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코비가 방한했을 때 단독 인터뷰를 가질 기회를 가졌습니다. 평소 레이커스 팬이었고 코비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앞에 서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코비가 빙그레 웃으며 ‘기자님! 우리에겐 28분이나 남았습니다. 차분하게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J : Jordan (조던을 뛰어넘고 싶었던 선수)

코비는 필라델피아 로워 매리언 고등학교(Lower Merion HS)시절부터 이미 전국구 스타였고 졸업과 동시에 NBA에 드래프트 됐다. 그는 입단 초 조던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심지어 덩크 할 때 혀를 내미는 것조차 흉내 냈다. 1996년 국내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모 매거진 편집장은 이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조던을 흉내 내는 선수’ 라고 소개했는데 당시 이 기사로 인해 국내에 코비에 대한 반감을 가진 팬들이 다소 생겨나기도 했다. 어쨌든 코비는 공개적으로 ‘조던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P : Player (그를 정의 하는 한 단어)

데뷔 초, 코비가 ESPN에 출연해 가진 인터뷰에서 “당신의 포지션은 뭔가.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I’m just a Player”
우리는 이 대답이 그를 정의하는 최고의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포지션에도 국한되지 않는 훌륭한 ‘농구선수’였다.

그가 사망한 뒤 NBA리그, 농구계는 물론 전 세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1월 29일 예정된 LA레이커스 대 LA클리퍼스의 경기는 무기한 연기됐고, 올스타전의 4쿼터 경기방식도 코비를 위한 헌정 형식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올 시즌이 끝날 때 까지 코비에 대한 추모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매일 경기에 나서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한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코비는 천국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후배들을 응원하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맘바 멘탈리티를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내는 것이 그의 유업을 받들고 코비를 기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우린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Thank You.. KOBE”.

* 코비에 대해 공유하고 싶은 일화가 있다면 댓글에 올려 주세요.(Just Comment, if you have some Kobe’s stories to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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